아침마다 성당 마당 한가득 낙엽이 떨어집니다. 저렇게 떨어지는 낙엽들은 한해를 어떻게 살았을까요? 크고 넓은 활엽수 잎이든 가늘고 뾰족한 침엽수 잎이든 나무에 붙어서 나무를 위해 햇볕을 받아 광합성작용을, 비와 이슬을 머금어 나무에 수분을, 그리고 그늘을 만들어 여러 생명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일들을 했었겠지요. 그렇게 생각해 보면 겨우 한철 나무에 붙어있다 떨어지는 낙엽이라 할지라도 그 역할과 수고가 적었다고 말할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엊그제 아랫마을(환우 성당) 공동체 형제 한 분이 공동체를 떠나 하느님 나라로 불리어 갔습니다. 공동체 가족들 가운데서 비교적 젊은(?) 나이인데도 병이 악화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연락을 받았는데 전날 저녁 늦게 돌아가셨다고, 사정상 오늘 장례를 치러야겠다고, 오전 시간에 염습을 해줄 수 있겠는지 물어왔습니다. 그러자고 해놓고 얼마 전 뵈었을 때 모습을 떠올려보니 눈이 튀어나올 만큼 크게 부릅뜨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안압이 높은가?’ 싶었는데 염습을 하면서 보니 그동안 애타게 보고 싶던 가족들을 기다리던 눈빛이었나 봅니다.

염습 장소에는 부음을 받고 떨어져 있던 부인과 두 딸이 와 있었습니다.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채 이별을 맞는 부인의 서운함과 안타까움이 두서없는 말마디와 울음으로, 자신들을 그토록 기다리는 줄 알면서도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자주 와보지 못한 딸들의 눈에서는 미안함과 후회의 눈물이 소리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고인의 몸을 닦아드리고, 수의를 입혀드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돌아가신 분은 어떤 삶을 사셨을까?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왔을까? 병들고 나이 들어 가족이 보고픈대도 기대만큼 자주 찾아오지 않는 가족들을 그리며 서운한 마음을 품었을까? 아니면 내일모레 날짜가 잡힌 딸아이의 결혼식에 참석도, 사위에게 자신을 드러내놓고 소개도 할 수 없는 처지를 두고서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었을까? 아쉽고 답답한 심정이었을까?

병고에 시달리며 아파했던 흔적을 닦아드리며 한편으로 서운했을, 또 한편으로는 남겨두고 가는 가족들에게 미안했을, 그리고 고통 가운데서 한평생을 살면서 어쩌면 품었을지도 모르는 미움과 원망의 마음까지도 닦아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주제 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당신들의 나이보다도 훨씬 젊은 사목자를 아버지(神父:영혼을 돌보는 목자)라고 불렀는데 아버지 된 도리를 다하지 못했던 저 자신의 삶에 용서를 청합니다. 수의를 입혀드리며 이제는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를, 낙엽이 나무들의 거름이 되어 가을 지나고 봄이 오면 새 생명으로 되살아나듯이 고인이 살아왔던 삶이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 되기를….

공동체의 사제로 살아간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않으면서, 그것이 이유 아닌 이유가 되어버린 것이 제 삶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돌아오는 쉬는 날에는 본가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서달원 고흥 소록도성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