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에 들러 팔순 어머니를 모시고 읍내 식당에 들렸다. 평소에 당신이 좋아하시는 달짝지근한 야채 불고기를 사들일 생각이었다. 메뉴표가 보이지 않아 국물이 있는 소고기 전골을 주문했더니 갸름한 얼굴의 여종업원이 설렁탕이냐고 자꾸 되물었다. 몇 차례 실랑이를 벌이다가 주인을 불렀더니 북에서 온 종업원으로 의사소통이 부족했음을 사과했다. 통일교육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진 하루였다.

국내 거주 북한이탈주민(탈북자)이 이미 2만 3천여 명을 넘어섰다. 최근엔 연간 3천여 명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것도 어린이들과 젊은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내에 들어오는 탈북자가 한해 평균 10명 미만으로 영웅대접 받던 시절과는 사뭇 다르다. 북에서 온 그들은 대부분 일가친척도 없이 망망대해를 떠도는 느낌이 아닐까 싶다. 그들에게는 마음을 터놓고 공감해주는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형식적인 인사치레에 그치고 깊은 대화는 외면하고 있음을 본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목숨을 걸고 찾아온 조국이 야속하게 느껴지리라.

국내 탈북자 중 직장을 갖고 있는 자가 30%가 채 안 된다. 나머지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생계유지비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겨울철에 연료비를 아끼느라 냉방에서 생활하며 2등 시민으로 사는 경우도 흔하다. 이들이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자리 문제와 자녀교육 문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를 이어 2등 시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북한에서는 배가고파 못살겠고, 중국에서는 언제 잡혀갈지 몰라 두려워 못살겠고, 대한민국에 오니까 몰라서 못살겠다”고 한다. ‘대한민국’이란 말도 남쪽에 와 처음 들어본 그들이다. 북에서는 ‘이남’, ‘남조선’, ‘아랫동네’로 부르기 때문이다. 입냄새를 제거하는 가그린을 음료수인 줄 알고 마신적도 있다고 한다.

통일의 그날, 탈북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남과 북의 중립적 입장에 설 수도 있고, 북한주민들의 우리 사회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때 북한주민의 호감을 얻어야 한반도 상황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통제된 사회에서 주어진 일만 해오던 그들이 우리 사회에 적응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통합에 대한 준비과정으로 각종 사회단체나 일반 자원봉사단체를 만들어 이들을 끌어안는 다양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그리고 대기업에서부터 탈북인을 시범적으로 채용하여 우리 사회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주는 풍토조성이 절실하다. 우리 사회나 정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이들에게 성공신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돕자. 이들이 우리 체제에 잘 정착하도록 돕는 것이 바로 통일을 대비하는 ‘통일연습’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따뜻하게 포용할 능력이 없다면 남북이 하나 되는 통일은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최근 북한 휴대전화 가입자가 8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3개월 동안 무려 13만 여대가 증가한 숫자다. 자유를 찾아온 그들의 생활이 행복해 질 때, 그 소식은 북으로 날려 보내는 대형풍선이나 확성기보다 더 큰 파괴력을 갖고 북한 전역에 전파될 것이다.

〈송민석 통일부 전남통일교육센터장·UNIST위촉입학사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