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국회가 공전하고 있다. 지난 22일 기습 처리된 한미 FTA 비준안 국회의결 때문이다. 그 여파로 정국은 얼어붙고, 연일 광화문 광장에선 FTA 반대시위가 열리고, 지방에서도 한나라당 당사와 도청 앞 등에서 반대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가장 속이 타는 사람들은 호남권 지자체 공무원들 일 것이다. 예산 국회가 원활하게 돌아가야 지역현안을 국회의원들에게 설명도 하고, 이해 설득시켜 내년도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 턴데, 국회가 공전되고 있으니 누구에게 이야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나라당에 가서 이야기하기도 민주당에 눈치 보이는 등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돌이켜 보건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 지난 3년 동안 새해 예산안이 여야 합의하에 국회에서 표결 처리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첫해인 2008년에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의 촛불시위가 한창인 가운데, 12월 13일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한나라당의원끼리 단독 의결처리 했었으며, 2009년에는 12월 31일 본회의에 상정할 예산안을 예결위원회 회의실이 아닌, 국회 245호실에서 야당 몰래 예결위원회의를 열고, 곧이어 본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단독으로 의결했으며, 2010년에도 야당과 시민단체가 4대강 예산삭감을 주장하자 이를 막기 위해, 12월 8일 한나라당 단독으로 의결 처리했었다. 이렇게 내리 3년 동안 단독으로 처리하였으니 올해는 잘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역시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 예산심의 기간은 매년 10월 2일부터 12월 2일까지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심의기간은 국정감사가 끝나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구성된 후 시작되기 때문에 대개 40여 일 정도밖엔 되지 않는다. 따라서 연말 예산국회는 일정상 바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올해는 느닷없는 한미 FTA 비준안 기습처리 사건으로 잘 돌아갈 것 같던 예산국회가 저렇게 공전되고 있으니, 순조롭게 여야 합의에 의하여 본회의에서 표결처리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보도에 의하면 한나라당은 예산 심의를 하자고 야당을 연일 압박하고 있고, 야당은 한나라당이 한미 FTA 날치기 처리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으면 예산심의 등 국회일정을 일체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역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올해 예산마저 한나라당 단독으로 처리하게 놔둘 수 없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보면 지난 3년 동안 호남지역의 예산은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거의 정부예산안대로 반영되거나 삭감되는 등 엄청난 불이익을 당한 것이 사실이다. 통상 국회 예결위 심의과정에서 전남도의 경우 매년 평균 2천억 원 정도 증액된다고 볼 때, 예산 날치기로 인한 그동안의 피해는 엄청났다는 결론이 나온다.

예산은 그야말로 정치적 투쟁의 산물이다. 야당이 예산심의에 불참하게 되면 한나라당은 속으론 정말 쾌재를 부릴 것이다. 사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올해가 그들에게는 마지막 지역예산을 챙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한미 FTA 반대도 중요하지만, 국회예산 심의 적극 참여하여 그들만의 잔치는 막아야 한다.

〈강대석 전 전남도 공무원교육원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