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객원교수로 와 있는 파탄의대(Patan Academy of Health Sciences)에서는 해마다 국제 자문회의를 연다. 올해가 벌써 7회째이다. 9개국에서 온 30명이 4박 5일간 어떻게 파탄 의대를 도울 것인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연구하였다.

첫날은 산골 마을 방문으로 시작되었다. 아침 7시, 지프차 4대에 나누어 타고 아찔한 비탈길, 때로는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갔다. 산모퉁이를 돌기 전에 경적을 울려서 충돌을 피하고 오고 가는 차량들이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를 끼고 비켜간다.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면서 기사들의 운전 솜씨에 감탄하였다.

오전 11시경, 중간 지역 보건소에 도착하였다. 간단한 치료와 산파 역할을 하는 지원 인력이 두 사람 있었다. 미숙아를 위한 인큐베이터는 나무상자를 두 칸으로 나누어 아래 칸에 알전구를 켜둠으로 위 칸의 아기를 따뜻하게 하는 기발한 발상의 나무상자였다. 산모는 출산 후 하루를 보건소에 머물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산골마을에서 카트만두는 고사하고 지역 보건소까지 오는 험한 길, 출산 후 다음날 돌아가야 하는 어려운 여건을 실감하였다.

몇 시간을 더 가서 도착한 비교적 낮은 지대인 마관푸르에는 약 40만 명이 산다고 했다. 전통의상을 입은 백여 명의 여성대표들이 우리를 환영하였다. 이들이 의료보조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조합을 만들어 공동 자산을 운용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네팔 여성들의 저력을 확인하였다. 마관푸르의 보건소는 건물 2동에 직원이 많아서 다양한 검사도 가능하며 잘 운영되고 있었다.

네팔인들은 아침 식사 대신 차를 곁들인 간식으로 해결하고 하루에 2끼, 점심과 저녁을 많이 먹는다. 우리는 아침은 각자 해결하고 출발했고, 점심으로 네팔 음식인 달밧과 닭튀김 몇 조각, 마관푸르에서 대접받은 차가 그날 먹은 음식의 전부였다. 계획보다 4시간이 늦은 밤 11시, 저녁도 못 먹고 그 험한 산길을 하루 종일 달려 카트만두에 돌아왔건만 신기하게 아무도 불평하거나 짜증내는 사람이 없었다. 도대체 이런 너그러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다음날 부터는 회의의 연속으로 기금 모금, 교수 확충, 연구력 강화를 위하여 실행 가능한 구체적 안을 제시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기금 모금 회의에서는 대학의 비전에 맞는 접촉 가능한 9개의 기관 명단, 해당기관으로부터의 기부 예상 지수, 기부자들에게 어떻게 감사할 것인지 등 70여 쪽의 제안서 초고가 나왔다. 타당성 조사 용역을 전문회사에 주어 수개월이 걸린다 해도 이처럼 훌륭한 제안서가 만들어질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다른 두 분야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결과가 나왔다.

주최 측은 참석자들에게 부탁하고 사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단한 흡인력을 가지고 모두가 자발적으로 기쁘게 참여할 수 있는 놀라운 토론장을 제공하고 있었다. 하버드 대학의 타빈 교수는 ‘파탄의대는 전 세계의 모델’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자기가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기 위하여 애가 타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스스로 찾아가서 힘을 보태고자 하는 그 여러 사람 중의 하나였다.

나는 문득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사가 생각났다. “미국이 여러분을 위하여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인류의 자유를 위하여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참석자들이 보여주는 그 자발적 열정은 최빈국 네팔의 한 신설 대학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이 대학을 ‘전 세계의 자유를 위한 모델’로 보는 그 글로벌 마인드와 긍정적 연합이 이유였음을 깨달았다.

〈박행순 전남대학교 명예교수·파탄의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