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인 ‘던’을 만난 것은 약 10년 전, 광주 하남공단에서 외국인 근로자 자원봉사를 할 때였다. 그는 한국에 일하러 온 첫 주에 산재 사고로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을 몽땅 잘렸다. 병원에서는 그의 잘린 손가락을 치료해 주는 것으로 임무를 끝내지 않고 엄지밖에 남지 않은 그 손의 활용도를 높여주고자 고심했다. 의사들은 던의 두 번째 발가락을 잘라내서 검지가 있었던 곳에 이식했다.

이식수술이 성공해서 그의 발가락이 마치 손가락처럼 움직였을 때, 그들의 기발한 발상, 탁월한 솜씨와 함께 환자를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에 감동했다. 그의 엄지와 새 검지는 마치 한 쌍의 부부처럼 서로가 꼭 필요한 존재로써 함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던은 장기간 입원 중에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거나 누군가를 원망하는 대신 장래 희망을 이야기하였다. 열심히 한국어를 배워서 네팔에 돌아가면 한국인 관광객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 앞에서 내색할 수는 없었지만 산재보험에서 얼마의 보상금을 받았던 간에, 졸지에 손과 발에 이중 불구가 된 그 젊은이가 안쓰럽고 오랫동안 마음에 걸렸다.

어느 날, 파탄의대 부속병원(Patan Hospital) 복도에 수많은 젊은 청년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병원 직원 말에 의하면 이들은 한국에 근로자로 가기 위해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고 이런 청년들이 7000 명쯤 된다고 했다.

나는 불현듯 던이 생각났다. 이들이 앞으로 이국땅에서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일하다가 혹시 다칠까, 귀국 후의 삶은 어떻게 전개될까 염려되었다. 지금 그들의 마음은 온통 한국에 가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있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생존을 위하여 한국어를 지금부터 열심히 익혀야 한다는 것, 사고 없이 건강하게 돌아와야 한다는 것, 한국에서 번 돈은 건강한 미래를 위한 튼실한 종자돈이 되어야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 궁금했다.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우리나라에 온다. 던의 경우처럼 한국에 도착해서 첫 주에 산재 사고가 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한국에 도착한 이들의 마음은 들떠있고, 시차적응은 안 되고, 두고 온 가족과 집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이다. 몸은 피곤한데 음식은 안 맞고, 문화적 충격은 큰데 말은 안 통한다. 공장의 기계 조작은 서툴고 시끄럽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에 혼이 나갈 지경인 이런 모든 상황을 첫 주에 경험한다.

네팔에서 한 달에 10만 원 정도를 받거나 아예 고정적 일자리가 없는 근로자들에게 10배 내지 20배의 월급을 주는 한국은 정말 ‘꿈’ 같은 존재이다. 그들이 몇 년간의 고생 끝에 목돈을 손에 쥐고 귀국했을 때, 안타깝게도 자국에는 그 돈을 밑천 삼아 성공할 수 있는 사업기반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거의 모든 귀국 근로자들의 공통된 문제는 벌어온 돈은 시간이 지나면서 없어지게 마련인데, 예전처럼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할 맘이 안 생긴다는 것이다. 다행히 어떤 이들은 좋은 주택을 지어 외국인들에게 세를 주는 건물주가 되기도 하고 유창한 우리말을 하며 자신의 상가에서 네팔 특산품 장사를 하는 청년도 만났다.

던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의 발가락이었던 손가락은 마음대로 잘 움직여주는지 궁금하다.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삼천만 네팔인 중에서도 그를 알아볼 수 있다. 그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한국인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박행순 전남대학교 명예교수·파탄의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