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선거의 해이다.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올해처럼 한 해에 동시에 치러지는 경우는 20년에 한 번 씩 발생하니 정치권이나 국민 모두 올해 한해의 선거 결과에 거는 기대와 설렘이 어느 정도일지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광주에서는 수년 전부터 매년 설 다음날 YMCA 강당에서 시민사회 인사들이 모여 합동세배를 하고 덕담을 주고받으며 시민사회 전체의 소망을 기원해 왔다. 올해 시민사회가 합동 세배 장소에 내건 표어는 선거의 해답게 ‘정권교체’, ‘정치개혁’, ‘Change 광주’였다. 합동세배 장소에 참여하는 인사들의 성향으로 볼 때 정권교체의 표어가 등장하는 것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4년 동안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남북관계가 후퇴한데다가 극심한 지역차별까지 이루어진데 대해 많이 분노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합동세배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단순히 정권교체만을 열망하지 않았다.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 역시 무척 컸다. 몇 사람만을 위한 선거가 아니라 진정 국민을 위한 선거가 되고 정치가 되게 하여야 한다는 주장들이었다. 야권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는 정당이 민주당이고 지금까지 호남이 민주당의 주요 거점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 지역에서 정치개혁의 목소리가 높다는 것은 곧 민주당에 대한 불신의 정도도 그만큼 높다는 것도 의미한다.

세 번째 표어 ‘Change 광주’에는 호남지역, 더 좁게는 광주·전남지역 정치인들을 대대적으로 교체하여 정치권의 변화를 가져오고 그 결과로 호남을 변화시켜야 하는 열망이 담겨져 있다. 의정활동을 잘하는 누구누구는 그래도 계속 키워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온건한 성향의 사람들이다. 상당수의 사람은 현역 국회의원 모두를 바꾸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펼친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사회의 발전 속도는 세계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빛났다. 경제발달과 정치 발달 양면에서 이런 성공적 사례를 만든 국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이 자랑스러운 역사, 특히 정치발달을 이루는 데 있어서 호남인들의 역할은 매우 컸다.

그러나 이 자랑스러운 역사 속에서도 정말 어둡고, 미래 역시 긍정적 전망보다는 비관적 전망을 하게 만드는 분야가 있다. 지방 문제가 그것이다. 지방의 피폐, 그 중에서도 특히 호남의 피폐는 한국 사회의 다른 발전적인 모습과는 정 반대로 진행되었다. 이 어두운 역사에서 이 지역 정치인들의 책임은 어느 정도일까?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지역균형발전은 이 시대 이 지역 정치인들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 중 하나이다. 비수도권 지역 정치인들, 특히 호남에 토대를 둔 정치인들은 지역 발전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민주당 출신 정치인들이 이 부분에 유념해야 한다. 야당 정치인으로서의 어려움과 한계를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사실 그들은 민주당이 집권당이었던 시절에도 지역민들을 감동시킬 만큼 열심히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설 다음날 이 지역의 시민사회가 외친 ‘Change 광주’라는 구호 속에는 이 지역을 위해 헌신할 정치인들의 출현에 대한 열망도 함께 포함된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선거에는 이성적인 것보다 감성적인 요소가 더 많이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을 감안해 시민사회는 ‘무조건 교체’라는 감성적인 구호보다는 의정활동을 기준으로 한 좀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에 입각해 변화를 유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지역균형발전, 이것은 호남인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일관되게 추구했던 가치이자 목표였기 때문이다.

〈전남대 교수·역사학〉



은펜칼럼은 오피니언 기고 최우수작 수상자의 모임인 ‘은펜클럽’ 회원들의 칼럼을 싣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