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별이다. 이젠 모두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지만, 그래서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고 누구 하나 기억해내려고 조차 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건 여전히 진실이다.’

임철우 작가의 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 첫 페이지는 ‘모든 인간은 별이다’로 시작한다. 작가가 태어난 고향은 섬사람들이 너무 착해서 선량도 라고 불리던 섬이었다.

그 섬 한가운데 있는 백운산 높은 중턱에 학서암이라고 하는 암자가 있다.

통일 신라 장보고 시절, 첫 번째 구산선문이었던 보림사에 살던 혜은스님이 수행을 하던 중에 하루는 꿈을 꿨다. 신비롭고 경건한 순백의 큰 학이 자신을 인도해서 백운산 서쪽 능선에 내려앉는 꿈이었다. 그 꿈을 좇아 지금의 생일도 학서암 자리에 곧바로 절을 짓고 학이 사는 상서로운 절이라는 뜻으로 학서암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터를 잡은 학서암은 주변 섬마을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역할을 한다. 매년 정초가 되면 인근의 금일도, 충도, 신도, 금당도 등지의 섬에서 불공을 드리러 오는 돛단배들이 줄을 이었다.

바람을 가득 담은 수많은 돛단배들이 선량도에 배를 대는 모습은 지금에 와선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일찍이 바다를 터전으로 삶을 일구었던 섬사람들은 뭍에 사는 사람들보다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일찍 터득했으리라. 그리고 인간의 힘으로 거스르지 못하는 자연에 대한 숭배는 종교적인 신앙심으로 이어진다. 저마다의 바람과 소망을 안고 바다를 건너 산을 올랐던 섬사람들의 지극한 마음에 수행과 기복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재단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랴. 그들의 순박하고 지고한 마음에 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

학서암을 거쳐 백운산 정상에 오르면 완도의 수많은 섬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장흥 소년 뱃사공이 일본 순시선의 눈을 피해 동학 농민군을 피신 시켰던 약산과 금일도, 일제에 맞서 소작쟁의를 주도했던 소안도, 서른이 넘지 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허사겸이 봉기를 일으켰던 완도, 다산의 형이었던 정약전이 유배 와서 홀로 숨졌던 신지도, 섬들은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많은 사연을 품고 바다에 떠 있다.

백련사에서 남도 기행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종종 학서암과 백운산을 오른다. 산꼭대기에 오르면 모두들 명상을 하게끔 한다. 물론 강제로 하지는 않는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권한다. 화엄경을 보면 ‘중생은 부처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그 말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질문을 하나 던진다. 우리는 모두 정말 별일까?

해답은 쉽지 않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는다. 그것은 창발성(emergent property), 전체의 각 부분이 상호작용을 한 결과 전혀 다른 것이 나타나는 속성에 의존한다. 보림사의 스님이 꿈을 꾸고 학서암을 세우고 수많은 섬사람들이 배를 타고 선량도를 찾고 그들의 소망과 꿈,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오는 섬 이야기들, 그 중중무진 화엄의 바다에 빠져 인과의 이치에 따라 오늘에 이른 우리들, 그렇게 무의식의 정서를 통해 우리는 모두 별임을 깨닫게 되는 단초가 제공된다.

하늘의 은하수 같은 섬들의 물결.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의 한숨과 소망이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반짝인다.

〈백련사 총무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