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고산 지대는 만년설로 덮여있는 반면, 카트만두 분지에는 한겨울에도 평균 온도가 영상 7, 8도 정도여서 엄동설한(嚴冬雪寒)이라는 말이 맞지 않다. 하지만, 지난 겨울에는 카트만두 외곽에 눈이 내리고 혹독한 추위를 겪었다고 한다.

네팔의 주택들은 창이 허술해서 바람막이 구실을 제대로 못 하는데도 많은 네팔인 가정에서는 난방 없이 겨울을 지난다. 홑창과 문틈으로 들어오는 겨울바람은 뼛속까지 시리게 한다고 표현했다.

지난겨울 강추위에 하루 여섯 시간만 전기를 공급하는 날이 많았고 석유와 가스도 동났다. 난방은커녕 때맞춰 음식 만들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지금도 가게 앞에는 가스통을 든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내가 근무하는 파탄의대에는 병원 덕택에 24시간 전기가 들어오는데도 낮에 사무실에서는 거의 모두 전기를 끄고 지낸다. 아직은 건기라서 최대한 전기를 아껴야하기 때문에 절전이 생활화되어 있는 것 같다. 전기가 턱없이 부족하고 수돗물도 부족하여 제한 급수를 하는 터에 더운 물로 샤워를 하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겨울이 고통스러운 것은 대다수의 네팔인들과 외국인들이며 부자들은 집에 자가발전 시설을 갖추고 있어 겨울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카트만두 시가지의 땅값이 열 배, 스무 배로 올랐다고 한다. 사람들은 모여 앉으면 갑자기 생겨난 땅 부자들을 보면서 열심히 일할 맘이 생기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며 빈부 격차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을 염려한다. 정부를 원망하고 정치가들의 무능함을 비난하면서 아예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고 말하는 것을 듣기가 딱하다. 왕정에서 공화국으로 바뀌면서 가졌던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큰 것 같다.

교민들은 우리나라 60년대 석탄 난로 비슷한 모양의 난로를 고안하고 주문 제작하여 장작을 때면서 겨울을 이겨냈다고 한다. 자연의 혹독한 추위에 맞서 온돌을 개발한 적극적이고 지혜로운 민족의 후예답다.

그 난로를 보니 스텐도시락들을 난로 위에 잔뜩 올려놓고 위아래를 바꾸어 가며 뜨겁게 데워먹던 학창 시절이 생각난다. 반세기 전에는 네팔과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이 거의 비슷했다는데 어떻게 우리나라는 상위 10위권에 육박하고 네팔은 하위 10위권에 머무르게 되었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큰 마트에 갔다가 연탄을 보았다. 구멍을 세어보니 신기하게도 19개, 우리나라의 19공탄과 똑같은데 부석해 보이고 높이가 절반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가벼워서 연탄과 번개탄을 섞어 놓은 것 같았다.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고 난방도 한다는데 집안에서 사용하기에는 안전성이 염려되었다. 시간 맞춰 연탄을 갈던 생각, 연탄가스를 마신 친구가 응급실에 실려 가던 생각 등이 났다.

이 나라에 살면서 자꾸만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도 당신들처럼 살던 때가 있었고 지금 우리나라에 아직도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른 희망의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겨울 동안에 거칠어진 얼굴을 손질하러 간다는 친구를 따라 피부미용실에 갔다. 간이침대가 세 개 놓여있고 침대 위에는 얇은 이불이 덮여있다. 이불 속에 누우니 발 쪽에 핫백이 있어 따뜻하다. 여러 가지 오일과 크림을 바꿔가며 한 시간 남짓 마사지를 하는데 손끝이 닿는 곳마다 사뭇 강한 파동이 물결처럼 퍼져나가면서 시원했다. 마사지 가격이 천 루피, 우리 돈으로 1만5000원쯤 된다. 임금 수준은 우리의 십 분의 일 정도인데 피부마사지 값은 거의 맞먹으니 엄청나게 비싼 편인데도 손님들이 많다.

혹독하게 추웠던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여심은 매끈하고 부드러운 피부를 위하여 기꺼이 지갑을 열고 비싼 값을 지불한다.

〈박행순 전남대학교 명예교수·파탄의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