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18년째 살고 있는 허인석씨 부부는 한국 교민 중 그 역할이나 연차에 있어서 단연 원로급에 속한다. 네팔 사람들을 돕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의 의식을 깨우쳐주는 것이라고 여기며 허씨는 연수원을 설립하여 네팔의 젊은 청년들을 가르친다. 요즘은 현지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들어오는 젊은이들도 훈련시키고 있다.

한국의 청년들에게 세계인으로 살도록 도전의식과 안목을 키워준다. 청년들은 고아원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기도 하고, 빈민촌에 가서 노력봉사도 하며 음악도 가르친다. 네팔의 학교에는 음악 교육이 없기 때문에 전공자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

또 네팔에는 한국어 붐이 크게 일고 있어서 네팔 청년들, 특히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게 한다. 이렇게 우리 젊은이들이 타문화를 경험하고 섬기며 사는 법을 배우는 동안 자연스럽게 영어의 중요성을 깨닫고 네팔어도 짧은 기간에 곧잘 구사하게 된다.

허씨는 또한 네팔인의 가정을 세우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부부 세미나, 자녀 교육, 행복한 가정 만들기, 결혼 예비학교 등. ‘아버지학교’는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받고 또 그대로 아들에게 대물림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역할을 한다.

프로그램 마지막 날, 남편이 무릎을 꿇고 아내의 발을 씻겨 주는 순서에서는 장내가 온통 눈물바다가 된다. 철저한 남성중심의 전통 문화 속에 길들여진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이것은 일생 중 최대 감격의 순간이다. 네팔 사회, 특히 시골에서는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현장인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정년퇴직 후 봉사하며 장기적으로 살려고 들어오는 실버들이 많아졌다. 이들은 50대에서부터 70대에 이르며 다양한 전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허씨는 이들이 잘 정착하도록 실버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식사를 대접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담도 해준다. 참석자들은 서로의 삶을 나누며 외로움을 달래고 격려를 받는다. 그들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고, 현지인 여성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쳐 자립할 수 있도록 돕거나 국제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일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연금으로 편하게 사는 삶을 마다하고 이곳에서 대안가정을 만들어 고아와 가정형편이 어려워 맡긴 10명의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는 부부도 있다. 외부 후원 없이 경제적으로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서 큰돈은 들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실버모임에서 최근 관광비자로 입국한 두 60대 봉사자들을 만났다.

한 분은 네팔이 너무 좋아서 여섯 번째 왔다고, 시설의 수리, 보수 등 무슨 일이든 한다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다른 분은 캄보디아, 미얀마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방문하며 가는 곳마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튀밥 뻥튀기 기계로 튀밥을 만들어 나누어 준다. 가난한 시절 우리도 좋아했던 튀밥은 푸짐한 먹거리가 된다. 또 하모니카 연주로 입만 아니라 귀도 즐겁게 해준다. 그는 서울시의 고급 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하고 매년 3개월씩, 두 차례, 6개월을 이렇게 외국에서 봉사하면서 지낸다고 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과감하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자 도전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노년들도 한국의 안정되고 안락한 삶에 안주하는 대신 다양하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재능기부를 하면서 세계인으로 사는 것을 이곳 네팔에서 본다. 나는 허인석씨 부부를 비롯하여 네팔에 사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그들이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들과 여러 삶의 방식들을 보고 배운다.

〈박행순 파탄의대 객원교수·전남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