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개론’이 흥행을 하고 있다. 이는 건축전문가를 위한 영화가 아니다. 엄태웅(승민)과 한가인(서연)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기억’, 애절하고 소박한 사랑이야기다. 집 짓는 과정과 사랑이라는 소재를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지루하지 않게 적당한 긴장과 웃음을 주고 있다.

첫사랑을 만났던 건축학개론 수업시간, 그 후 15년이 지나 헤어졌던 승민이 근무하는 건축사사무실을 불쑥 찾아간 서연은 집을 지어 달라고 의뢰한다. 설계도를 확정해 가는 과정, 집이 완성되어 지는 긴 여정속의 이해와 갈등, 해결의 과정 속에서 첫사랑을 기억한다. 그리고 추억하며 과거와 현재가 겹치고 사랑과 건축이야기가 연결된다. 첫사랑이 궁금해서 찾아 왔다는 서연, 현실의 고객이 된 그녀와 건축가로 만난 또 하나의 첫사랑인 승민, 그 사랑이야기 속에 건축설계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장소와 공간에 대한 이해, 그 이해를 위한 ‘추억과 기억’ 이야기가 잘 녹아 있다.

집이 새롭게 완성된다. 그곳엔 어린 시절 키가 자란 것을 표시했던 추억의 흔적이 붉은 벽돌 벽에 남아있고, 우물가 발자국이 있었던 곳은 물고기가 있는 작은 연못으로 변해 있다. 옛 기억을 되살리며 추억하게 하는 기억의 장치물로 등장한다.

이런 요소는 새로 만들어진 집을 편안하게 하고, 낯설지 않게 해준다. 사람의 기억과 추억이 집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다. 이런 기억의 공간과 추억의 장소는 우리네 동네와 도시에서도 그대로 간직되는 게 필요하다.

대학시절 승민과 서연이 살던 정릉 동네 풍경도 지금은 사라지고 찾기 힘든 서울의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집 사이사이에 좁은 골목이 살아있고, 그 골목길 사이를 걸을 때 옛 기와집과 개량한옥, 근대식 슬래브집들의 처마와 외벽이 연출하는 풍경이 살아 있다. 이런 정겨운 동네는 재개발과 재건축, 뉴타운도 없던 시절의 평범한 동네의 모습들이었다. 우린 이런 것들의 소중함을 많이 잃은 후, 이제야 조금씩 그 가치를 인식해 가는 건축과 도시정책에 위안을 삼아 본다.

우린 그림이나 음악을 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건축은 훨씬 더 일상적이다. 집과 그 외 건축물, 도시의 설계와 완성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지만 결국엔 ‘우리’가 만들고, 그 속에서 사는 것 또한 모두 ‘우리’이기에 ‘건축을 한다.’라는 것은 우리네 삶에서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이며 소중한 것들이다. 그리고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고, 건축은 삶의 문화를 내포하고 있다.

영화 중 수업시간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이 도시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라고 질문을 한다. ‘본인이 살고 있는 도시나 동네, 그리고 집에 대해 이해를 하기 시작한 것부터가 건축에 대한 공부의 시작이다’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숙제를 내준다. ‘자신이 사는 동네를 여행한다.’라고… ‘동네, 골목, 집 등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해를 시작하는 것이 건축학개론의 시작이다.’라고 말하며 강의를 마무리한다.

건축학개론은 건축전문가만을 위한 개론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첫사랑’과 ‘건축’의 접목시킨 영화 ‘건축학개론’은 다시금 건축이 갖는 본질적 것을 되새기게 한다. 건축의 본질은 사랑에서 출발하고, 이는 사람의 삶을 위한 공간과 환경을 만드는 기본 학문이라는 것을… 건축은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기본 학문이고, 삶의 학문이며,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학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건축학개론은 우리들을 위한 ‘삶의 개론’이 되기도 한다.

〈박홍근 건축사·전남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