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만두의 한글학교는 토요일에만 운영하는 주말학교로써 2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번 학기에 유치원생부터 고1까지 74명이 등록을 했다. 한글학교 카페명에 있는 977은 네팔 국가번호여서 외우기가 쉽다.(http://cafe.naver.com/977han)

‘애국조회’라고 부르는 조회시간은 국민의례로 시작한다. 대형 태극기를 향하여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른다. 또한 수십 년 전, 학창시절에 하던 국민체조를 이곳 네팔에서 음악과 구호에 맞추어 학생들과 함께하면서 우리 교사들 모두 추억에 젖고 동심으로 돌아간다.

한글학교라고 한글 읽기, 쓰기만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전체 교과과정은 국어, 국사, 수학, 과학, 음악, 그리고 한자 시간으로 짜여 있다. 나는 3월에는 중학생 반을, 4월부터는 고1 반을 담당하는데 연간 지도계획서와 월 학습 계획서를 제출하라니 긴장되고 부담도 되었다. 중학생을 위해서는 인터넷을 뒤지고 학습 자료를 모으면서 어떻게 재미있고 유익한 과학시간을 만들어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킬까 고민했다. 고교생들은 이미 학교에서 배운 과학 지식이 있어서 제법 말이 통하고 대학이라는 관문이 눈에 보여서인지 관심을 보이니까 가르치기가 중학생보다 훨씬 수월하다.

첫 시간에 아이들을 파악하기 위하여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로부터 3월 학기에 맞추어 혼자서 유학 온 아이들도 여럿 있다. 미국에 혼자서 조기 유학을 가는 청소년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한글학교 교사가 되기 전까지는 네팔에도 그런 아이들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이곳은 미국보다 생활비와 교육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마약이나 학교 폭력 등의 위험이 없을뿐더러 영어와 네팔어까지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네팔이 미국보다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청소년이 유학을 올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의 꿈을 물었더니 작가 지망생, 반기문 사무총장을 존경한다는 외교관 희망자, 화가, 음악가, 기타리스트를 비롯한 예술가, 선교사, 고고학자, 사업가, 수의사, 한의사, 교사 등 다양하다. 자기의 꿈이 자꾸 바뀐다고 대답하는 아이들과 꿈이 없다고 대답하는 아이들도 몇이 있다. 나는 꿈은 바뀔 수 있고, 꿈이 없는 사람은 없으며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 즉 미정일 뿐이라고 말해주었다.

교민뿐만 아니라 부모 중 한 사람이 네팔인인 아이들도 집에서는 모두 한국어를 쓴다. 학교에서는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영어와 네팔어는 자연스레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또한 학교에서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힌디어, 중 한 두 개를 선택으로 배우고 있다. 학교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아이들이 있고 이런 다민족 환경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대학에 갈 무렵 네 개 또는 다섯 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곳은 국내보다 환경은 열악할지라도 아이들은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면서 자란다. 길거리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소와 개가 다 함께 다니고, 때로는 나뭇짐을 잔뜩 싣고 그 위에 사람을 태운 코끼리까지 다니는 것을 본다. 따라서 아이들은 더 세계적이고 열린 마음을 갖게 되지만 자신들의 뿌리를 알지 못하면 정체성을 잃고 방황할 수도 있다. 한글학교는 청소년들이 또래끼리 어울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고 우리말로 함께 공부하고 노는 중에 자기들은 네팔에서 사는 한국인임을 상기시킨다. 이것이 바로 교민들이 한글학교의 중요성을 깨닫고 애착과 기대를 가지고 적극 참여하며 지원하는 이유일 것이다.

〈박행순 파탄의대 객원 교수·전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