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3일은 네팔의 설날이었다. 영자 신문인 ‘The Kathmandu Post’ 1면 상단에는 히말라야와 붉은 해를 배경으로 ‘Happy New Year 2069’라고 쓰여 있었다. 올해 설이 네팔의 마지막 설일 수도 있다는 기고문도 있었다. 5월 말에는 네팔의 새 헌법이 국회를 통과할 것이고 이에 따라 새로운 네팔은 비크람 왕조에서 기원한 네팔 달력 대신 세계인들이 통용하는 그레고리안 달력을 채택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네팔인들은 자기 나라가 적어도 달력에 있어서는 서기력보다 57년이나 앞선다고 너스레를 떨고, 60대 외국인은 자기가 서양에서 태어났으나 네팔에서 살다 보니 올해 120세가 넘었다고 농담을 한다.

네팔은 토요일이 공식휴일인데 마침 설날이 금요일이어서 황금연휴인 셈이었다. 설에 우리처럼 고향을 찾는 대신 주위에서는 그 이틀을 위한 여행 계획을 세우느라고 바빴다. 나도 마음이 들떠서 황금연휴를 끼고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열 시간 거리에 있는 탄센의 선교병원에 가서 일주일 간 머물기로 마음을 정했다.

탄센은 고도 1372m에 위치하고 경치가 좋기로 소문난 곳으로 내가 묵고 있는 숙소에서 맑은 날에는 약 100㎞ 떨어진 안나푸르나 1, 2, 3봉과 베이스캠프, 그리고 마차프차레(물고기 꼬리라는 뜻)까지 볼 수 있었다.

탄센병원은 58년 된 병원으로 각국에서 와서 무료 봉사하는 외국 의료진들과 현지인들이 협력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외과 의사 김동욱 선생과 김에스더 간호사도 수년째 봉사하고 있었다. 인터넷 자료에 의하면 탄센은 인구가 2만3693명인 중소 도시이다. 그러나 인근 각처에서 환자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탄센병원의 연평균 수술이 7000 건 이상이며, 태어나는 신생아는 2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병원안내를 받는 중에 화상 환자들, 특히 아이들이 가장 안타까웠다. 네팔 전통 가옥은 방안에 화덕이 있어 어린아이들이 끓는 물이나 불에 데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또 여성들이 ‘사리’를 입고 조리를 하다가 합성 섬유로 만든 사리 자락에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불길이 퍼지고 쉽게 옷을 벗을 수도 없어서 화상 정도가 심하다고 한다. 젊은 여성들은 ‘수르왈’이라는 바지와 상의 ‘꿀따’를 입고 꼭 긴 숄을 목에 두른다. 거의 모든 학생들은 청바지와 티셔츠를 선호하는데 안전을 위해서 다행인 것 같다.

설날에는 아침부터 병원 뒷산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수천 명은 됨직한 많은 사람이 부처상과 작은 사원이 있는 탄센병원 뒷산에 모여서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사먹기도 하면서 하루를 즐기고 있었다. 젊은 남녀가 몇 명씩 어울려 여기저기서 음악에 맞추어 막춤을 추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풀밭에 앉아서 땅콩을 까먹으면서 이야기를 하거나 남들이 노는 것을 구경하고 아이들은 풍선장수 앞에 줄을 섰다.

다음날에는 간호대학에서 장학기금 모금을 위한 축제가 열렸다. 화창한 날씨에 수르왈과 꿀따를 입고 곱게 화장한 간호대생들이 아름다웠다. 입구 쪽 음식 코너에서 튀김과 ‘모모’라고 부르는 만두를 사먹고 안쪽의 마사지 코너에서 손톱, 발톱에 예쁘게 매니큐어, 페디큐어 손질도 받았다. 얼굴 마사지는 오백 루피, 우리 돈으로 7500원이었다. 십자수로 만든 예쁜 카드, 여러 색깔의 천 조각을 정성들여 이어붙인 퀼트도 팔려서 모금액에 보태졌다.

구경 온 관객들이 행사 공간을 가득 메우고 중앙무대에서는 노래, 전통 춤과 경쾌한 음악에 맞춘 디스코, 힙합 댄스 등이 흥을 돋우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축제는 한낮이 기울도록 이어졌고 사람들은 어제와 다른 분위기를 또 마음껏 즐겼다. 나는 탄센 주민들과 뜻밖의 즐거운 시간을 함께하면서 네팔의 2069년을 맞이하였다.

〈박행순 파탄의대 객원 교수·전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