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딸아이를 깨우는 일이 쉽지 않다.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준비하자고 달래지만, 아이와 실랑이하다 보면 자연 목소리가 높아지는 때가 많다. 그런 날이면 아이의 뒷모습이 괜스레 마음에 걸린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기 시작하면 사춘기에 들어선 증거라고 한다. 사춘기에 들어서면 점차 생체 시계가 밤이라고 간주하는 시간이 늦어지고, 밤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시간도 함께 늦어져서 늦잠을 자게 된다는 것이다. 10대 수면 연구의 권위자인 미국 브라운 대학의 카스카돈(M. Carskadon) 교수의 연구 결과다.

수면은 정서의 안정, 인지 능력 향상 등 고차원적인 정신 작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청소년기의 뇌는 여느 시기보다도 빠르게 발달하고 변화하고 있으며, 엄청나게 다른 경험과 정보 처리에 직면하고 있다. 그래서 카스카돈 교수는 청소년기의 적정 수면 시간이 9시간 30분은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나라 청소년의 평일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생체리듬에 역행하는 것도 부족하여, 일찍 일어나는 종달새가 되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생체리듬이 올빼미 같다면, 등교 시간을 늦추는 것은 어떨까. 미국의 세인트 조지 하이스쿨에서는 등교 시간을 30분 늦춘 결과 낮 동안의 졸림증과 낮잠 욕구가 크게 개선되었고 아침 식사 횟수도 늘었다고 한다. 영국의 한 학교에서는 등교 시간을 10시로 늦춘 결과 중등교육자격검정시험(GCSC)의 평균 성적이 대폭 상승하고, 장기 결석도 27%나 감소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며칠 전 출근길에 들은 라디오 방송의 한 구절이 자꾸 머리에 맴돈다. 방송에서는 농사꾼이 되어 생명공동체 운동을 벌인 윤구병 선생의 ‘잡초는 없다’라는 책의 한 구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달력상으로 몇 월 며칠 정도에 콩을 심을지를 고민하며 동네 할머니께 “콩은 언제 심어요?”하고 여쭈었더니, “으응, 올콩은 감꽃 필 때 심고, 메주콩은 감꽃이 질 때 심는 거여.” 하시더란 것이다.

자연의 때에 따라 콩을 가꾸듯이, 아이도 자연의 흐름에 맞도록 키울 수는 없을까. 인간이 만든 시간의 잣대에 아이를 옥죄고, 부모의 기대 욕구에 맞춰 아이의 성장을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해 본다. 윤구병 선생은 심지 않은 망초, 씀바귀, 쇠비름, 광대나물 따위를 ‘잡초’로만 알고 모두 뽑아 버렸는데, 실제로는 소중한 약초이거나 나물이었다고 했다. 아이를 습관을 바꾸고자 하는 부모의 모습과 잡초를 대하는 인간의 모습이 자꾸 겹쳐 보인다.

“우리는 너무 경제 중심적이고, 인간 중심적이고, 물질 중심적이어서 가끔은 더 큰 것이 우리를 감싸고 있고, 이 더 큰 것들과 더불어 같이 하는 마음이 없으면 도무지 살아남을 길이 없다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윤구병 선생이 제도 교육에 의심을 보내고 실험학교를 시작하면서 세상에 던진 한마디였다. 교육에 대한 근원적 성찰 없이 아이를 현실에 끼워 맞추려고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본다. 대학을 위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아침잠을 희생할 것을 강요하는 부모 때문에 딸아이가 신록의 5월에도 꿈을 노래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여 마음이 무겁다.



〈김창균 광주광역시교육청 장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