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수준의 향상과 서구화된 식습관에서 비롯된 만성 질환의 발병이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고혈압 환자는 전 세계적으로 약 6억 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국민건강보험(2009년) 기준으로 약 620만 명의 고혈압 환자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통 고혈압은 아무 증상 없이 찾아와 뇌졸중, 심장병, 신장염 등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린다.

고혈압은 잘못된 식습관, 가족력, 음주, 흡연, 운동 부족,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 환경적인 영향을 고루 받아 발생하며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원인이 되는 질병이 없이 나타나는 ‘본태성 고혈압’이고, 다른 하나는 신장 질환이나 혈관 이상, 내분비 질환 등으로 인해 이차적으로 발생하는 ‘이차성 고혈압’이다. 전체 고혈압 환자 중 이차성 고혈압 발생률은 5% 이하로 추정되며 이들 중 높은 빈도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신장 질환에 의한 고혈압이다. 반대로 본태성 고혈압도 계속되면, 신장 질환이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필자에게 개인의원에서 고혈압을 진단받고 꾸준히 고혈압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던 한 40대 여성이 진료를 받으러 왔다. 이 환자는 “생활 패턴이 특별히 달라진 게 없는데, 최근 들어 몸이 피곤하고, 식욕이 떨어진다”고 호소했다. 검사 결과 신장 기능이 정상의 10% 이하로 떨어진 말기 신부전증으로 진단됐다.

이 환자와 같이 신장은 기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도 자각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모르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점차 신장 기능이 저하되면서 피곤함, 가려움증, 식욕부진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말기 신부전으로 진행되면 호흡곤란, 구토 등 증상이 악화된다. 신장 기능이 10% 이하로 저하되면 약물 치료가 불가능하고 투석이나 신장이식을 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으로 가게 된다.

신장은 우리 몸의 25%에 달하는 피를 걸러내는 거름망 역할을 하고, 혈압을 조절하는 기능도 한다. 따라서 고혈압은 그 자체로 신장질환을 유발할 수 있으며, 반대로 급·만성 신장질환에 의해 고혈압이 유발되기도 한다. 대한신장학회 조사에 따르면 투석을 시작한 말기 신부전 환자 중 약 16% 정도가 고혈압이 원인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고혈압이 신장질환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혈압과 혈당을 잘 관리해서 신장이 상하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고혈압 치료를 위해서는 신장 기능 보호 효과가 입증된 약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엔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와 같은 고혈압 치료제는 혈압을 효과적으로 낮춘다. 또 제2형 당뇨병과 신질환을 가진 고혈압 환자들의 말기 신질환 발생률, 사망률을 유의미하게 감소시키는 것으로 임상 결과 밝혀졌다.

모든 질환이 그렇듯, 초기에 치료하면 대부분 정상회복이 가능하나 만성화가 되면 제 기능을 담당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고혈압 환자의 경우, 1년에 한 번 이상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신장 합병증이 생기는지 확인해야 한다. 신장 합병증은 혈액 검사와 소변 검사만으로도 간편하게 측정 가능하다. 또한 고혈압 환자 중 만성 신장병을 동반한 경우 전문의와 상의하여 식이요법과 약물요법 등을 이용해 적극적인 혈압 조절이 필요하다.

하지만 고혈압은 완치되는 질환이 아니라 꾸준한 조절이 필요한 질환이기 때문에 평소 생활습관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흡연자라면 금연을 하는 게 권장되며, 꾸준한 운동과 짜지 않게 먹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다. 특히 과체중인 경우에는, 적극적인 체중 감량을 통해 표준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광주기독병원 순환기내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