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고향 사람들을 만나고 여고 동창들을 만나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대학에서 가르친 제자들을 만났을 때, 그것은 기쁨을 넘어 감격으로 다가왔다. 제자 다섯을 포함하는 여덟 명이 6월 말경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오겠다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이 여행을 주도한 제자는 나더러 같이 가자며 작년 내 정년 퇴임식 때 이런 날을 기대하면서 트레킹화를 선물했었다고 했다. 그 때쯤이면 내가 담당하는 교과 과정도 끝나고 일정이 미리 약속이나 한 듯 맞아 떨어졌다.

그러나 결국 나는 트레킹을 포기했다. 작년에 같은 코스를 올랐던 여고 후배의 속 깊은 충고 때문이었다. 험한 코스를 무리한 일정으로 따라나섰다가 낙오하면 제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은근히 나를 만류했다. 나는 그 조언을 고맙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나의 일시 귀국 일정을 일행과 맞추고 트레킹 대신 하루 밤을 같은 호텔에서 묵는 것으로 절충을 보았다.

같이 산을 오르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놓쳤으므로 나는 메일을 썼다. 전직뿐 아니라 현직도 교수인지라 제자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열정은 식을 줄을 모른다. 이제는 가르치고자 하는 주제가 세상 학문이 아니라 영적인 내용들로 바뀌었을 뿐이다. 질서정연하게 운행되는 자연계와 천지 만물을 보면 창조주의 존재를 미루어 알 수 있지 않으냐며 산을 오르면서 창조주를 묵상하라고 했다. 제자는 예나 다름없이 순하고 착하게도 그러마 하고 했다. 흘려듣지 않고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느꼈다.

40대 중반의 제자들을 카트만두 국제공항에서 만나던 날,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고 서로 얼싸안으며 반가워했다. 네팔 복장 ‘꿀따’를 입고 머리를 묶은 나의 모습을 보고 “현지인 다 됐다”라고 놀라면서 “언니”라는 호칭이 튀어나왔다. 내가 만든 갓김치와 깍두기를 건네면서 나 역시 잠깐 ‘언니’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처음 2∼3일은 지금 어디쯤 올라가고 있는 중이라고 소식을 전해오더니 이후에는 아예 전화 연결이 되지를 않았다. 6월 중순부터 우기라서 매일 비가 오는 것이 여간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일행은 엿새 동안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예정대로 돌아왔다. 그 빗속에서 4130m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전원이 다녀온 것이다. 여행사에서는 한국 사람들이니까 그런 무리한 여행상품도 감당할 수 있어 추진한다고 했고 팀은 차질 없이 그 일정을 소화해 냈다.

귀국 전날, 우리는 관광객들이 북적대는 ‘타멜’에서 하루를 보냈다. 길거리를 손을 잡고 함께 거닐고 식당 경복궁에서 제육볶음에 에베레스트 맥주를 곁들여 식사를 했다. 식사도중에 전기가 나가자 촛불을 밝히니 더욱 분위기가 고조되고 이야기에 흥을 돋웠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을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고생한 이야기, 그 바쁜 일정 중에도 히말라야 토종닭에 마늘을 넣고 백숙을 삶아 먹은 이야기, 옷 속을 파고드는 거머리에게 헌혈한 이야기, 고산병, 말로만 듣던 네팔의 번다(스트라이크) 이야기 등이 이어졌다. 이십여 년 전처럼 그들은 똑똑하고 씩씩하고 자신감에 넘쳐있어서 나까지 덩달아 기운이 솟는 듯하고 행복했다.

6월에 트레킹을 하기는 좋지 않지만 이를 보상이라도 하듯 맛있는 망고를 실컷 먹을 수 있다. 값도 싸서 1킬로에 100루피, 우리 돈 1500원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망고를 잔뜩 샀다. 겉은 시퍼렇게 생겨서 덜 익은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잘 익어 샛노랗고 과육은 새콤 달콤 맛있다. 우리는 과즙이 뚝뚝 흐르는 망고를 원없이 먹으면서 네팔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다. 나의 귀국길은 제자들과 함께하면서 기쁨이 배가 되었다. 그러나 며칠이 못 가서 내 마음은 다시 네팔로 향한다.

〈파탄의대 객원 교수·전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