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 살면서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받고 지나온 나의 삶을 다시금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다. 30대에 내 나름의 목표를 달성했을 때, 나는 오히려 방황하였다. ‘호강에 잣죽’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의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고 추구하던 목표를 달성했을 때 방황할 여유가 생겼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 할 때 삶의 의미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어느 날 네팔의 상류층에 속하는 한 의대교수가 “생명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생명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생명(生命)이라는 단어 속에 ‘사는 것은 명령이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그 교수는 ‘초월자의 명령’이냐고 물었다. 힌두교도이고 임상교수인 그가 내게 묻는 것은 생명의 신비나 생명에 대한 의학적 소견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30대 여성이 이야기 도중에 “왜 살아야 하는지 단 한 가지라도 좋으니 그 이유를 말해 달라”고 했다. 이 여성은 명문 대학을 졸업하였고 공인회계사가 되는 것이 자기의 꿈이고 삶의 목표인데 마지막 3차 필기시험에서 계속 낙방을 한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자꾸 먹어서 살이 찌고 공부에 집중은 안 되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싫은 것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여성이 묻는 ‘살아야 하는 이유’는 ‘죽고 싶다’는 메시지로 내게 전달되었다. 그간 들은 바에 의하면 네팔 여성의 두 번째 사망원인이 자살이라고 한다. 쉽게 대답할 상황이 아닌 것 같아서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이냐고 돌려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우리는 삶의 수단(means of life)을 삶의 목표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 보일 때 삶의 의미(meaning of life)를 상실했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 여성에게는 공인회계사라는 목표가 곧 삶의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살아야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내 친구 ‘하리마야’는 50대 중반의 마취과 수간호사이다. 작은 침실 두 개의 직원 숙소에 부부와 아들, 세 식구가 사는데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데려온 20대 전후의 형제가 함께 살게 되어 다섯 식구가 되었다. 친구는 그 형제를 병원 공사장에 취직시켜 주었고 그들이 이른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일하면 한 달에 각각 10만 원쯤 받는다고 했다. 내가 처음 그 집에 초대받은 날, 형은 그간 번 돈과 선물 꾸러미를 들고 시골 아버지께 갔고 동생이 카레밥을 맛있게 만들어 내왔다.

친구는 앞으로 그 형제들에게 운전 기술을 배우게 해서 자립하게 하고 여동생은 중학교를 마치면 데려다가 간호조무사를 만들겠다고, 그 가족에 대한 장래 계획을 말해주었다. 마치 자기 가족의 일처럼 신이 나서 설명하는 친구를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남들과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할 듯싶은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 가정에는 조건 없는 사랑, 편안함과 친밀함이 감돌았다. 하리마야는 남을 돕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삶의 의미와 살아야할 이유를 찾은 것 같았다.

내가 사고로 코뼈에 금이 가서 수술하고 사흘 동안 입으로만 숨을 쉴 때 삶의 질이 다르다는 것을 경험했다. 자유롭게 코로 숨 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 것을 깨달았다.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 될 수 없으며 사는 것 자체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보다 차원 높은 삶을 사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이를 위하여 우리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파탄의대 객원 교수·전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