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은 어느덧 우리의 정서에 깊게 배여 있다. 어려웠을 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로부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라면은 우리 곁에 있다. 해외여행을 갈 때 라면은 필수 지참품이다. 외국의 웬만한 관광지에는 한국산 라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만리장성엘 가도,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에 가도 우리 한국산 라면은 어김없이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융프라우를 등반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융프라우 만년설을 바라보며 우리의 라면을 먹는 것이라고.

이렇게 정상 정복의 동반자적인 역할을 하는 라면이 때로는 간난의 상징이기도 하다.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융프라우 정상에서 맛본 라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듯이 정상을 차지한 선수와 라면이야기가 결합하면 놀라운 성과를 내게 된다.

한국 최초로 체조부분에서 금메달을 딴 양학선 선수. 그가 독보적인 양1 기술로 금메달을 딴 것도 빅 뉴스지만 대한민국 국가 대표선수의 부모가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도 특종감이었다. 거기에다 양선수의 어머니의 전화 인터뷰가 또 한 번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양학선 선수의 어머니는 “아들, 오면 뭘 제일 빨리 먹고 싶을까? 너구리 라면? 너구리 라면 말고 칠면조 고기 요리 해 줄게”라고 이야기했지만, 뒤의 칠면조는 주목을 끌지 못했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게 된다. 금메달과 비닐하우스, 그리고 라면, 정말 절묘한 조합이지 않은가. ‘라면을 먹고 자란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는 얘기를 고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 얘기가 전해지자 라면제조회사는 재빨리 평생 무료 제공 의사를 밝히고 라면 100상자를 전달했다. 너구리 라면값이 얼마나 된다고, 대기업이 생색만 내고 있다는 비난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양학선 선수의 라면이야기는 또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라면 소녀 임춘애,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금메달 3관왕. 혜성처럼 등장하여 중장거리 종목을 싹쓸이 한 선수이다. 특히 “라면만 먹고 뛰었어요. 우유 마시는 친구들이 부러웠고요.”라는 기사를 보고 전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선수다. 하지만 이 기사는 기자의 창작이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당시 육상 코치는 열악한 학교 육상부의 처지를 설명하면서 “선수들이 간식으로 라면을 먹는다. 조금 환경이 좋은 학교는 우유도 지원된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라면만 먹고 뛴 것으로 각색된 것이다.

사람들은 역경을 딛고 일어선 선수에게 더 열광한다. 양학선 선수는 우리가 바라던 그런 얘기를 전해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라면은 역경을 설명해주는 좋은 이야기감이자 메타포이다. 열대야를 시원하게 보낼 수 있게 해준 런던 올림픽이 끝났다. 훌륭한 성적을 거둔 우리 선수단에게 격려를 보낸다.

〈광주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