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환자를 볼 때 의사도 사람인지라 만나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은 환자도 더러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실정법상 진료거부가 가능할까? 의과대학에 다닐 때 의료인은 환자의 요구가 있을 때 진료를 거부할 수 없으며, 만일 거부할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배웠다. 그 영향으로 거의 모든 의사는 진료를 거부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상호 경쟁이 심해지고 있는 현재 의료계의 상황을 보면 진료거부는 생각할 수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끌어들여야 할 판이다.

현행 의료법 제15조 제1항은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의 진료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동법 제89조에 의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짐은 물론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에 의하여 자격정지 1월의 행정처분까지 받게 된다. 그렇다면 법률에 규정된 ‘정당한 사유’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중요하나 이에 대한 판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정당한 사유’의 예시로 시설 및 인력이 없거나, 진료일정 때문에 불가피하거나, 의사가 아픈 경우 등과 같은 8개 사항을 열거하고 있으나 이는 진료를 할 수 없어 진료를 거부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진료가 가능한 상황에서 하지 않는 진료거부에 대한 정당한 사유라 볼 수는 없다.

최근 들어 의료법에 진료거부를 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하위법에 담아야 한다는 것에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근거를 정당한 이유라고만 명시하다 보니 현실에서의 적용이 사실상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이며 시대가 변한만큼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 “정당한 진료거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매건 재판부로부터 판결을 받아야 하는 것이 현재 상황이며, 의료현장에서 진료거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위법령을 통해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법적인 해석 등이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법원 판례,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 의협의 연구 정도를 살펴볼 때 정당한 진료거부 사례에 대한 논의는 3가지 범주에서 얘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물리적으로 진료거부를 할 수밖에 없는 범주로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예시하고 있는 사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사가 부재중이거나 신병으로 인해 진료를 행할 수 없을 때, 병상·의료인력·재료 등 시설 및 인력 등이 부족해 새로운 환자를 받아들일 수 없을 때, 외래 진료 일정 때문에 당일 방문 환자에게 타 의료기관 이용을 권유할 수밖에 없는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두 번째 범주로는 의학적인 판단에 근거한 범주로 의사가 다른 전문 과목 영역 또는 고난이도의 진료를 수행할 전문지식 또는 경험이 부족한 경우, 환자가 의료인으로서의 양심과 전문지식에 반하는 치료방법을 요구하는 경우, 더 이상의 입원치료가 불필요하거나 상급의료기관에서의 입원치료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학적인 판단 아래 충분한 설명 후 요양병원 등으로 퇴원을 지시하는 경우 등이 해당된다.

마지막 범주로는 가장 뜨거운 논쟁을 펼쳐야 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진료거부다. 환자 또는 보호자 등이 의료인에 대해 모욕·명예훼손·폭행·업무방해 등을 할 경우, 환자가 의료인의 치료방침에 따를 수 없다고 선언한 경우 등이 능동적인 진료거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환자의 생존에 관한 문제를 의사의 인격에 관한 문제와 맞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생존권이 침해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의사의 인격권 또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물리적, 언어적 폭력을 휘두르는 환자 앞에서도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가에 의문이 든다.



〈동아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