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 온 후 여러 사람에게서 닉 사이먼 회관(NSI, Nick Simon’s Institute)에 대하여 들었다. 어떤 이는 사이먼가의 가정사까지 소상하게 얘기해 주었다. 시간을 내어 그곳을 방문하려던 참에 영국에서 온 강사 부부가 ‘정신 건강을 위한 워크숍’을 NSI에서 개최한다고 해서 참석하였다. 네팔에는 각종 지식 재능기부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무료, 또는 점심값 정도만 내고 좋은 강의를 들을 기회가 많다.

‘짐 사이먼’은 아들 ‘닉’의 네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카트만두에 아들 이름으로 NSI를 세웠다. 사이먼 박사는 미국에서 수학 교수였고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어느 날, 어린 아들을 잃는 큰 아픔을 겪게 되었다.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다가 문득 생활에 변화를 갖고 싶어 대학에 휴직을 신청하고 증권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증권가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였고 결국 교수직을 사퇴하고 증권계에 투신하였다. 얼마 후에는 미국의 40대 재벌에 들게 되었다.

사이먼 박사의 아들인 닉은 대학을 졸업했으나 많은 젊은이들이 그렇듯 인생의 목표를 세우지 못하고 방황하였다. 이를 보다 못한 부모는 2002년, 아들의 등을 떠밀어 네팔에 보냈다고 했다. 그는 1년 가까이 네팔에 살면서 네팔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닉은 미국에 돌아가서 의대에 가겠다고, 그래서 의사가 되어 네팔에 다시 오겠다고 아버지에게 연락을 했다.

그가 마음을 둔 곳은 시골과 산간 오지의 의료 사각 지대였다. 마음을 잡은 아들의 말을 들은 부모의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닉은 미국에 돌아가지 못했다. 이듬해 여름, 귀국길에 들린 인도네시아의 휴양지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네팔에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대신하고자 파탄병원에 모자병동을 지어주었다. 산모와 신생아를 제대로 돌봄으로 영아 사망률을 크게 줄였다. 그는 또 아들이 원하던 것은 의료혜택이 적은 시골과 산간 마을이었다는 것을 기억했는지 별도 건물을 지어 NSI를 개관하였다. NSI는 의사보다는 중간 의료 인력을 양성하고 훈련시키는 일을 지원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의료시설이 취약한 오지에 거의 모든 의사들은 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산원, 간호사, 마취 조무사 같은 중간 인력들은 장기적으로 거주하면서 현지 주민들을 도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날 NSI에서 가져온 소책자에 의하면, NSI는 시골 보건소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의 자녀 교육비 지원, 의료인들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카트만두 병원에서 훈련받는데 드는 비용 지원, 시설 확충 등 다양한 지원 활동을 한다.

아들을 잃은 안타까움 속에 그 아들이 하고자 했던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아버지는 다른 이들을 통하여 아들의 꿈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고 있는 것이다. 닉이 살아있었다면 이 모든 일들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을까를 생각하면 얼굴도 모르는 그 가족들이 안쓰럽다.

네팔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이상한 힘이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인생의 길을 찾고자 도전받기 위하여 네팔을 찾아오는 것을 본다. 때로는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청소년들을 부모가 강제로 유배 보내듯 해서 억지로 오는 경우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간의 체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올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네팔을 떠난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달라지는지, 왜 다시 오고 싶어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히말라야라는 영산이 분명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곳에 순응하여 자연의 일부처럼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이 더 큰 이유일 것 같다.

〈파탄의대 객원 교수·전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