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손쉽게 네팔 문화를 이해하는 방편이기도 하려니와 좀 심심하기도 해서 영화관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영화관이 쉽게 눈에 띄지 않을뿐더러 그간 여러 차례 교민이나 네팔 친구들에게 영화 보러 가자고 해도 따라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영화를 다운받으라거나 CD를 빌려주겠다고 했다. 뭐 하러 귀찮게 돈 들여 영화관에를 찾아 가느냐는 눈치이다. 다른 일들은 잘 도와주는데 내 주위 사람들은 도통 영화관과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 같아서 자꾸 조르기도 민망하다. 나도 어느 틈엔가 슬그머니 네팔 영화관에 흥미를 잃었다.

내가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한국에 있을 때에 자주 영화관을 찾는 사람도 아니었다. 우리 영화관은 주로 젊은이들이 팝콘을 먹고, 콜라를 홀짝거리면서 영화를 관람하는 데이트 장소로 변한지 오래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가뭄에 콩 나듯 찾아보기 어렵고 불청객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가기 싫었다.

지난여름 한국 방문 중에 큰 맘 먹고 ‘도둑들’과 ‘피에타’를 보러 영화관 출입을 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국제 도당들의 도둑질을 보고나서 “재미있었다.”고 하면 어쩐지 도둑질을 용인하는 것도 같고 부추기는 것도 같아서 고약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도둑들’은 흥행에 성공한 영화라고 했고 재미있게 보았다.

끔찍한 장면들로 시작되는 ‘피에타’는 가슴을 아리게 하는 아픈 영화로 기억에 남았다. 김기덕 감독은 채무자들이 당하는 끔찍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모성의 슬픔을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였다. 그는 영화 제목을 기독교 예술의 주제인 ‘피에타’로 정함으로 이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처절하게 십자가에서 처형된 아들 예수를 끌어안은 마리아의 슬픔과 비탄을 상기시켜 주었다.

네팔에서 한국 영화를 볼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추석 바로 다음주에 ‘제 8회 한국영화제’를 러시아 문화센터에서 개최한다고 대사관에서 안내 메일을 보내주었다. 한 주 동안에 영화 네 편을 두세 번씩 상영한다고 했다. 첨부된 팸플릿은 세련되고 깔끔한 디자인에 영어로 영화개요가 설명되어있고 김일두 대사의 인사말도 들어있다. 네팔인과 한국인들은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은데 영화를 통하여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느껴보라고 권하였다. 그것이 바로 내가 네팔 영화를 보고 싶은 이유였다.

첫날 오전에 ‘페이스 메이커’를 보고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파파’를 보았다. 두 영화 모두 가족 사랑을 느끼게 하고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켜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밖으로 나올 때는 늦은 햇살 때문이 아니라 붉어진 눈을 감추려고 선글라스를 끼었다. 둘째 날 오전에는 ‘체포 왕’을 보고 오후에는 ‘오늘’을 보았다.

‘오늘’은 살인자에 대한 용서를 다루는 부분에서 2007년 개봉된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생각나게 했다. 가해자의 자기반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피해자의 일방적 용서는 두 영화에서 다 회의나 반발로 나타났다. 십자가위에서 운명 직전에 예수 역시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는데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빌었다. ‘오늘’과 ‘밀양’은 기독교의 본질을 파고드는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나 어렸을 적에는 영화관이 아니라 ‘극장’이라고 불렀다. 추석에 극장에 가는 것은 송편 먹는 것만큼이나 당연했다. 극장의 스크린은 지금 같은 초대형이 아니었고 의자가 별로 안락하지도 않았다. 러시아 문화센터의 영화 관람실은 극장에 온 것 같은 정감을 불러일으켰다. 추석에 때맞춰서 한국영화를 네 편이나 보고나니 여기가 이국땅이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어릴 적 극장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파탄의대 객원 교수·전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