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원이든 전공의의 힘든 생활을 잘 표현한 말이 하나씩은 있다. 나이 드신 교수님들께서 전공의 수련할 때 유행했다는 ‘전공의는 밥 먹을 땐 걸신, 잠잘 땐 귀신, 질문받을 땐 등신’이라는 우스갯소리로 전공의의 힘든 생활을 표현했던 얘기도 기억나고, 어느 병원에서는 힘들다는 것을 ‘후달리다’, ‘똥줄 탄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한참을 웃었던 적도 있다.

내가 수련 받았던 대학병원에서 유행어로 ‘환타’라는 말이 있었다. 환타란 ‘환자를 타는 사람’의 준말로 어디를 가든지 일이 많은 의사를 일컫는 말이다. 불행히 나 또한 환타라고 불리는 축에 껴 내가 응급실 당직을 서면 응급실이 미어터지도록 환자들이 몰려왔다. 오죽했으면 당직이 아닌 날 응급실에 들르기라도 하면 동료에 의해 응급실 밖으로 내몰리기까지 했을까. 내가 오기만 하면 환자들이 많아진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 80∼120시간 근무하는 전공의에게 환타라는 명칭은 놀림의 대상을 넘어 공포의 대상처럼 여겨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전공의 생활을 마친 사람에게는 환타라는 말이 전공의 시절의 자랑거리처럼 여기기도 한다. 하루 밤에 몇 명의 급성심근경색 환자를 진료했고, 일주일 동안 하루에 한두 시간씩 밖에 못 잤다며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자랑처럼 떠들기도 한다.

올 여름 골든타임이라는 의학드라마를 매우 재미있게 봤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주인공인 응급의학과 최인혁 교수는 지독한 환타다. 최인혁 교수는 못 말릴 오지랖으로 당직일 때나 비번일 때나 쉼없이 진료하고 수많은 어려운 환자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는 놀라울 만큼 교과서적이고 헌신적인 진료로 대부분의 문제들을 해결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멋진 환타의 존재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내가 본 의사들은 최인혁 교수만큼 멋진 환타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그중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정경운 교수님은 그야말로 환타 중에 환타다.

정말 별날 정도로 응급실이 한산한 어느 날 밤 당직이 아닌 날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정경운 교수님이 응급실에 나타난다. 그때에 맞춰 119부터 시작해서 타병원에서 전원 오는 응급차량이 연달아 도착하고, 심장이 멈춘 채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까지 응급실 한 켠을 차지하더니, 이내 심폐소생술의 초응급 상황이 동시에 세 군데서 발생하는 아수라장이 됐다.

모든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닐 때 교수님은 침착하게 여기저기를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환자 분류부터 심폐소생술까지 하나하나 정리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응급실이 조용해 졌고, 교수님은 날이 새오는 아침공기를 가르며 응급실을 유유히 떠났다. 응급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냐고 물을 만도 하지만 내가 본 교수님은 항상 응급실에 서 있었고 넓은 응급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진료하고 있었다.

교수님이 응급실에 계실 때는 항상 환자가 북적거렸기 때문에 환타라고 놀림을 받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교수님이 전공의보다 더 고생하면서 환자를 보는 모습을 본다면 환타는 놀림거리가 아닌 존경심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환타가 있기 때문에 응급실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 응급실이 복잡할 때마다 환타가 일들을 해결하고 있다고 말하면 환타에 대한 오해가 풀릴까. 게다가 동료, 후배의사들은 헌신적이고 인간적인 의사에게 자신의 환자를 맡기게 되니 환타가 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마치 골든 타임에서 이선균이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 최인혁에게 마지막 희망을 갖고 환자를 문의하는 것처럼 말이다.

몇 달 전 오랜만에 모교를 방문해 찾아갔던 응급실 당직실에서는 전공의와 야식을 먹으면서 모처럼 쉬고 있는 교수 환타를 만나볼 수 있었다.

항상 바쁘지만 여유롭게 보이는 정경운 교수님이 환타가 아닌 ‘화타’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분명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닌 것 같다.

〈광주병원 내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