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사미어’라고 불러달라는 41세의 네팔인 과학자(Dr. Sameer Dixit)를 만났다. 그는 미국에서 학사, 호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5년 전에 귀국하여 ‘분자역학센터’(CMD, Center for Molecular Dynamics)를 세우고 대표가 되었다. 그는 의대 교수로 와 달라는 초청을 사양하고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CMD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NGO 단체로서 다양한 국가, 연구소, 대학들과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도 다녀왔다면서 내가 마치 한국과의 네트워크를 이어줄 창구나 되는 듯 나의 방문을 반겼다.

나는 네팔의 연구시설이 열악한 것을 알고 있는데 이 센터에 대한 소문을 듣고 어떤 시설과 기기들을 갖추고 있는지 궁금했었다. 사미어가 전 재산을 털어서 이 센터를 세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의 안내를 받아 연구소를 둘러보니 공간은 작지만 필요한 기기들을 상당히 갖추고 있었다. 초창기 연구소답게 대표의 설명에서 패기와 열정이 느껴졌다.

그는 센터가 세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중보건에 관한 질병연구, 야생동물의 유전학적 연구, 그리고 약용식물 등 천연물 관련 연구라고 소개했다. 공중보건 분야는 주로 세계보건기구와 유엔의 지원을 받으며 네팔의 콜레라, 에이즈, 결핵, 간염 등의 연구가 주를 이룬다. 사슬처럼 연결된 요즘의 국제화 시대에 약한 사슬에 해당하는 네팔에서 질병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그 여파가 전 세계에 미치므로 네팔의 이런 연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사미어는 역설했다.

야생동물 연구 분야에서는 네팔 호랑이 유전자 프로젝트가 특히 주요 과제이다. 그는 네팔에서 발견되는 벵갈 호랑이들의 광범위한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준 뉴스레터에는 흰 표범, 사향노루, 늑대와 아시아 코끼리의 연구에 보존 유전학을 도입했다는 설명도 들어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과 다양한 희귀 동물들의 유전학적 연구가 중요하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내용이다.

마지막 연구주제는 고도 차이가 큰 히말라야에 폭 넓게 서식하고 있는 다양한 약용식물들이다. 당연히 많은 나라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작년 4월에는 인도의 지원으로 3일간 ‘천연물 학술대회’가 카트만두에서 열렸다. 대회의 주제는 “보다 나은 건강과 아름다움, 번영을 위한 천연물들”이라는 표어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사미어에게 다음 학술대회 때는 한국의 연구자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미리 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는 한국 과학자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회여서 그가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네팔어가 공용어지만 네팔에는 종족 언어가 100개가 넘는다. 모든 학교에서는 영어가 사용되기 때문에 교육받은 사람들은 국제사회에서 비교적 경쟁력이 있다. 대학원 과정으로는 보통 호주와 미국을 선호하고 학위를 받은 후에는 가능하다면 그곳에 정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인재 유출이 많은 나라이다.

나는 사미어에게 어떻게 이런 연구센터를 세울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외국에서 일한다면 돈은 벌 수 있지만 피고용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네팔에 돌아와서 연구자로 일하면 조국에서 일한다는 보람과 함께 존경받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당신 같은 경우를 “용의 꼬리보다 닭의 벼슬이 되는 것이 낫다”라는 속담으로 표현한다고 했더니 자기를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라면서 무척 좋아했다. 나는 그가 결코 평범한 닭의 볏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파탄의대 객원 교수·전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