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7년 포르투갈의 항해가 바르톨로뮤 디아스(Bartolomeu Dias)는 주앙2세로부터 인도양 항로 개척의 임무를 받고 항해를 떠난다. 아프리카 서쪽 해안을 끼고 남하하다 격렬한 폭풍우를 헤치고 해안선을 따라 동진하여, 마침내 해안선이 북쪽을 향해 구부러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디아스는 아프리카의 동쪽 해안을 따라 그대로 북상하자고 제안하였지만 겁이 난 선원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되돌아오는 도중에 큰 곶을 만났는데, 가는 길에는 폭풍 때문에 알지 못했다는 데서 연유하여 폭풍의 곶(Cape of storms)이라 이름 붙였다.

9년 뒤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는 이 항로를 이용해서 유럽인들이 그토록 소원하던 인도에 도달하였다. 주앙2세는 이에 폭풍의 곶이라는 명칭이 부적합하다고 여겨 희망의 곶,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로써 인도양과 대서양이 맞부딪히는 격랑의 바다와 절망의 땅은 희망의 신천지가 되어,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희망의 의미를 되새긴다.

희망과 절망은 언제나 같은 곳에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부정의 마인드 속에서 스스로를 현실의 벽에 가두는 것이 인간의 약한 마음인지도 모른다. 바스코 다 가마에게 인도 항로 발견의 공적을 빼앗긴 것은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한 스스로의 한계임에도, 이를 아쉬워하던 디아스가 유령선 플라잉 더치맨 (Flying Dutchman)이 되었다는 후일담이 전해지는 걸 보면 순간의 선택이 영원한 미완의 한탄으로 남을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1981년 어느 날, 회사로부터 불쑥 해고 통지를 당한 블룸버그. 그날 저녁 아내에게 모피 재킷을 선물한 그는 “직업이 있든 없든 간에 우리는 생활인으로 살아야 한다”면서 다음날 퇴직금 1000만 달러를 투자해 금융 정보를 제공하는 블룸버그 통신사를 설립한다. ‘포브스’가 세계에서 가장 정치력 큰 갑부 1위로 선정했던 현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의 이야기이다. 신화 속 이야기지만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 모든 재앙·고통·질병 등이 상자 밖으로 튀어 나와 인간을 괴롭히지만, 아직 상자 안에는 ‘희망’이 남아 있다. 다만 가지려는 자의 것일 뿐이다.

영국의 비평가이자 역사가인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1834년에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프랑스 혁명사를 탈고하여 친구에게 검토를 부탁하였다. 그런데 그 원고를 친구 집의 하녀가 불쏘시개로 난로에 넣어버렸고, 절망한 칼라일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벽돌공이 벽돌 쌓는 모습을 본 칼라일은 새롭게 용기를 얻어, “절망은 약한 자에게는 걸림돌이지만 강한 자에게는 디딤돌”이라며 벽돌 쌓듯이 새롭게 원고를 구성하였고, 3년 후 불후의 명작 ‘프랑스 혁명사’를 탄생시켰다.

우리는 많은 난관을 헤쳐 왔고, 앞으로도 어떤 예측 못 하는 문제들이 앞을 가로막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주저앉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한 해의 마지막에 가서 그 해의 처음보다 더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큰 행복”이라고 하였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 조그마한 발전이라도 이루어내는 것이 한 해의 행복이라는 뜻일 게다. 새해 벽두의 추위가 매섭지만, 밤이 깊어져야 새벽이 가까워짐을 생각할 일이다.

〈광주광역시교육청 장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