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문자와 카톡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건강하시라, 성인신부되시라, 행복하시라 인사를 한다. 그 인사들에 ‘복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받은 복이 과분하고 넘치면 복이 필요한 분들에게 나눠드리겠습니다’라고 답신을 보냈다.

우리들에게 새해 인사는 일종의 의식이다. 새해를 맞이하면 새 달력을 빼고, 새 결심을 하고, 새 다이어리에 올해의 계획을 적으며 들떠 한다. 의식(儀式)의 사전적 의미는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칙’이다. 그리고 의식을 반복하는 가운데 그 안에 담긴 내용이 규정되고 강화된다고 한다. 즉 우리들은 새해인사를 하면서 진짜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새해에는 그 인사를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종교는 이러한 의식을 강조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켕에 의하면 종교는 의례와 믿음의 두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 종교적 믿음은 사람들에게 확신과 힘을 준다. 또한 종교적 의례를 통해 인간은 신에 대한 확신과 힘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종교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것이 공동체의식을 심어주고 강화한다고 뒤르켕은 주장한다.

종교전통은 믿음과 의식을 통해 무엇을 하고자 했을까? 그것은 바로 역사인식이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로 시작하는 기도는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고백이며 이러한 전통이 만들어낸 것이 성경이다. 또한 전례는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으로 그리스도와 함께했던 일들을 돌이켜보고 이를 재현함으로써 역사의식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설날은 한해의 머리라는 뜻으로 ‘로슈 하 샤나’라고도 하고 속죄일이라고도 한다. 백성이 모여 나팔을 불면서 경축하였기 때문에 ‘나팔절’이라고도 한다. 이 축제는 하느님이 창조주요 임금이며 세상 만물의 재판관임을 기리는 축제이다. 이 축제의 또 다른 전례적 명칭은 ‘기억의 날’이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설날은 과거의 역사를 잘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자랑할 만한 것으로 뒤덮여 있는 것은 아니다. 실례로 열왕기에 나오는 왕 중에 성군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런가하면 예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예수를 배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를 돌이키고 기억하면서 이를 반추하였다. 사실 바빌론 유배 동안에 제일 먼저 그들이 한 것 역시 과거 역사를 보존하고 이를 전승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유신이 무슨 뜻인지, 박정희 대통령이 18년 동안 통치하였고 전두환 대통령이 7년을 통치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될까? 부마항쟁이 언제 왜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잘 모른다.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유신은 둘째치고 1987년 6월도 대부분 알지 못한다. 이스라엘이 오랜 박해 속에서도 견뎌내고 유다인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한 것은 그들이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 의식을 통해 역사를 전승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근현대사는 국사수업 끝자락에 잠깐 나올까 말까 하는 수준이며, 그것도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미화하거나 삭제되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설날은 ‘기억의 날’이다. 그들은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에게 아프고 슬픈 그들의 역사이기를 전했다. 그런데 우리들은 불과 30년 전에 일어난 일조차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미래만을 바라보라고 강요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설날 뿔 나팔이 울리면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회개한다. 우리의 설도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고 성찰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