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을 막론하고 국가가 국민에게 해 주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의식주와 평화로운 삶의 보장이다. 불행히도 북한 김정일·김정은 정권은 이 두 가지 문제의 해결에 실패했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그 최종 책임은 국가 경영의 책임을 진 김일성 가문이 져야 한다. 정세판단과 국가 경영 능력의 부족을 보완하고, 무엇보다 김일성 가문의 이익이 아닌 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남한의 경우 먹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사는 문제만큼은 남한 국민들도 북한 주민들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한반도에 전쟁이 발생한다면 그 승패 여부와 상관없이 남북 모두 폐허 상태가 될 것이며, 이와 함께 어렵게 이룩한 남한의 경제력과 국민의 부도 크게 후퇴하고 말 것이다. 당연히 남한 정부 역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도모하고 국민이 평화 속에서 살도록 만들어 줄 책무를 지니고 있다.

북한 지도부가 핵무기를 개발하고 모험주의로 나오는 주요 이유는 그런 극약처방책이 아니고는 북한의 안보와 김일성 가문을 지켜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정적 리더십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이 무능하고 모험주의적인 파트너를 상대로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김정은 정권이 무능하다고 할지라도 가까운 시일 내에 내부 붕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전쟁을 통해 그들을 퇴출시키는 것도 가능한 대안이 되기 어렵다.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핵무기를 개발할 정도로 군사 부분에서는 만만치 않은 능력을 보유한데다가 중국이라는 든든한 외교적 후견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전쟁은 승패를 떠나 한민족 모두를 공멸시킬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대안이 될 수 없다.

결국 해결책은 대화와 협력을 통한 공존책 밖에 없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마저 평화적 해결방안에 대한 열의가 부족한 것 같다는 점이다. 박정희 정부나 그 이후 계속된 군사정부 시절의 대북강경책은 일정 부분 당시 남한의 열악한 경제력이나 외교적 조건과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력, 외교력, 군사력 등 모든 부분에서 북한을 충분히 압도하고도 남을 유리한 위치를 구축하였다. 게다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이룩해 놓은 대화와 협력의 노하우도 존재한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모두 과거 군사정권이 즐겨 찾았던 대결주의 정책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가 보여 준 개성공단 해법은 과거 군사정부가 행한 심리전적 차원의 대북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으니 말이다. 극도의 열등의식과 위기의식에 빠져있는 북한을 이런 방식으로 평화공존의 테이블에 끌어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분명 공과가 함께 존재했다. 경제발전의 선장 노릇을 한 것이 주요 공적이라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친일행적과 대결주의 중심의 대북정책, 특히 민족문제를 장기집권의 수단으로 악용한 것은 부정적 유산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아버지의 긍정적 유산을 계승하고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정으로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려거든 대북정책에서 아버지와 다른 방식을 선택하라. 남북화해와 평화공존의 성과를 올린 다음 아버지 시대의 남북대결정책을 변호하는 것이다. 경제력과 외교적 조건 등 여러 면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아버지 시대에는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고. 이런 것이 바로 청출어람의 리더십이며 그래야 박정희 대통령의 부정적 이미지도 완화시키고 명예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최영태 전남대 교수·역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