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가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할 기회를 얻었을 때의 유명한 이야기다.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쇼펜하우어는 당시 최고의 철학자로 여겨진 헤겔과 같은 시간대에 강의 시간을 배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헤겔의 강좌는 수강생이 밀려 복도까지 꽉 찼지만 쇼펜하우어의 강의를 수강 신청한 학생은 달랑 5명뿐이었다. 이후에도 쇼펜하우어는 절치부심하고 헤겔에 몇 번 도전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참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여파로 쇼펜하우어는 결국 베를린 대학을 떠나게 된다.

매년 새 학기가 되면 ‘쇼펜하우어 현상’이 곳곳에 나타난다. 대학마다 수강생 부족으로 폐강된 강좌가 수십 개 공지된다. 학교별로 차이는 있지만 보통 수강생이 10∼20명 이내면 폐강된다. 시간강사로서는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이 되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고, 전임교수도 책임시수를 채우지 못하게 되어 큰 짐이 된다. 필자도 이번에 수강학생이 적어서 강좌가 폐강됐다.

내심 ‘학생이 너무 많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는데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은 주로 전공과목을 강의해서 폐강의 위협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 있었는데 이번엔 교양과목이어서 꼼짝없이 당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교양강좌의 어려움을 실감하게 됐다. 대부분의 신임교수가 이런 과정을 거쳐서 대학에 적응한다는 말로 위안을 삼고 있다. 나름대로 원인을 찾아보고 몇 가지 소회를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무엇보다 제목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전공과목이 아닌 교양과목은 일단 어렵게 느껴지면 학생들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이미 각 대학은 딱딱한 교양강좌의 이름을 바꾸고 내용을 일부 보완하는 ‘포장 바꾸기’에 적극 나선 지 오래다. 이번에 살아남은 강좌를 보면 ‘알재생성’ 형 제목을 붙인 것이 많았다. ‘알재생성’이란 ‘알기 쉬운’, ‘재미있는’, ‘생활 속의’, ‘성공적인’과 같은 말을 넣은 강좌를 말한다. 이 간단한 수식어가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반면에 필자는 ‘OO전략’이라고 자신 있게 제시했다가 학생들의 눈길을 끄는 데 실패했다. 전혀 전략적이지 못했다.

둘째, 기초 학문을 외면하거나 학점 따기 어려운 강좌를 기피하는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학생들 커뮤니티에는 입맛대로 골라 들으려는 학생들의 글들이 넘친다고 한다. 이를테면 과제 없는 교수님 추천, 시험문제를 객관식만 내는 교수님 추천, +로만 점수를 주는 교수님 추천, 수업을 널널하게 해 주시는 교수님 추천, 조별과제 없는 교수님 추천 등등… 이런 잣대로 추천과 비추천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현실적인 학생들로 대학이 넘쳐나고 있다.

셋째, 과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강의를 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된다. 현실적으로 학생의 입맛에 맞춰서 강의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폐강의 위협을 무릅쓰고 계속 원칙을 고수해야 하는지. 어떤 교수는 강의계획서를 성의껏 자세하게 기록했더니 수업이 빡빡할 것 같다고 수강생이 적어서 폐강되고, 강의계획서를 대충 빈칸으로 둔 강좌는 수업이 설렁설렁할 것 같아 수강생이 몰린 것을 보고 어이없어 했다. 대학의 강좌마저도 제목으로 낚시질(?)을 해야 하다니 말이다.

교수의 강의계획서는 일종의 자기소개서라고 한다. 학생의 까다로운 선택 기준을 통과하려면 전략적으로 작성해야 한다는 말이다. 교수의 강좌를 학생들이 선택적으로 수강하는 일은 쇼펜하우어 시대부터 쭉 내려온 일이다. 대학의 고객은 어디까지나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편하고 쉬운 길을 찾으려는 학생들의 선택경향과 교육자로서 추구하는 방향 사이에 많은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갈등이 대학교육의 발전에 기여하게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