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끝난 앞마당엔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다시 고요로 가득합니다. 설악에서 달려온 단풍은 산꼭대기를 거쳐 서서히 하산을 하다가 마침내 천왕문 앞 느티나무에 도착했습니다.

‘선차의 향기를 듣는다’를 주제로 청태 전 차문화 축제와 더불어 혜민 스님과 피아니스트 임동창 선생이 함께한 이번 명상치유 산사음악회(지난 18일)는 대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보림사 차의 역사는 신라말 선승들이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함께 들어와 뒷산에서 재배하여 전차, 떡차로 내려오다가 조선 후기 다성인 초의선사가 ‘보림백모’를 만들어 일약 다인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장흥군에서는 청태전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단장, 이제는 세계 명차 대회에서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 뒷산에는 순백의 차꽃 향기가 그윽하게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순백의 색깔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참마음입니다. 서로 믿고 하나가 되면 그간의 쌓였던 우울과 스트레스는 스스로 물러갑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보배인 참마음은 차꽃처럼 순백의 모습입니다. 참으로 고결하고 청정합니다. 사람마다 이 바탕 위에 생각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그림을 그립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그린 그림을 마음대로 지우고 다시 그릴 수가 없지만 수행자들은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기에 시비양단에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끝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여러 가지 색깔의 생각들을 일어나자마자 순간적으로 포착해 순백의 참마음으로 돌이키는 수행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을 쫓아서 시비를 일으키면 생각이란 불기운의 장애를 입어 열이 오르고 스트레스라는 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일어나면 바로 깨달아 순백의 참마음으로 돌이키면 흔적없이 사라지고 순간 몸과 마음은 쾌활해 집니다. 이러한 효과로 인해서 서구에서는 우울과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필수도구로 명상을 하고 있으며 통합의학으로 발전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 차꽃 향기를 코로 맡지 않고 귀로 듣는다면 일상사 그대로가 해탈 삼매를 이루고 일마다 걸림이 없어 언제나 주인공으로 당당한 삶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향기롭고 싶어서 몸에 향수 뿌리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향을 싼 종이에서만 향기가 나게 마련입니다. 세상의 많은 향기 가운데 으뜸인 것은 향기 없는 무심의 참마음입니다. 일체 꽃과 과일의 향기를 만나게 되면 향기를 따라서 좋다, 나쁘다는 양변의 시비를 일으키지말고 순간 포착을 하여 향기가 없지만 일체 향기가 나오는 무심을 깨달으면 영원히 향기로운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의 향기는 세상을 거슬러 오르기에 모든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하는 대자비심으로 나타납니다.

세상은 온통 소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에서부터 시작해 휴대전화 소리까지 소리의 공해 속에서 늘 긴장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산사음악회를 통해서 일체의 소리를 산사의 고즈넉한 곳으로 데려와서 소리의 고향이 어디인 줄 돌이켜보면 가을 하늘처럼 맑고 밝은 우리의 참마음임을 깨닫게 됩니다.

올 봄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와 더불어서 사람이 산다는 것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부처님께서는 고통을 참고 이겨야만 살 수 있다고 해서 사바세계라고 했습니다. 사바세계를 벗어나는 하나의 길은 일체 소리와 향기를 통해서 순백의 차꽃처럼 해맑은 참마음을 자각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