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에 제비선창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소록도를 방문하시기 직전에 폐쇄된 선창으로, 지금은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제비선창이 폐쇄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1984년도에 소록도에 교황님이 오신다고 발표되자마자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소록도를 취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부분의 방송사는 일주일 안에 소록도를 취재하고 떠났지만, 미국 NBC 방송국 취재진은 거의 한 달 가까이 소록도 곳곳을 세밀히 조사를 하였답니다. 그 결과 소록도에 있는 제비선창의 아픔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옛날 소록도 국립병원은 강제 수용시설이었습니다. 전염의 위험 때문에 철저히 격리를 시켰던 곳입니다. 그래서 환센환우들이 배로 소록도에 처음 들어올 때 제비선창이라는 곳으로 들어왔습니다. 당연 한센환우들의 전용부두입니다. 이 선창이 일제 강점기 시대 때부터 1984년까지 이어져 오고 있던 곳입니다. 이것을 확인한 미국NBC 방송은 이렇게 취재를 하였습니다.

“한국 소록도에는 배타고 대는 곳이 두 군데입니다. 한 곳은 직원전용부두이고 다른 한 곳은 한센인들의 전용부두입니다. 이것은 여전히 한센인들이 차별받고 있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한센병은 DDS라는 약 때문에 이미 극복이 된 병이고 전염 가능성이 없는데 그것을 알고도 여전히 병원직원들은 배를 타고 육지에 나갈 때는 그들과 다른 곳을 통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랬습니다. 여전히 같은 배는 탈 수 없었습니다. 이 사실이 미국 전역에 방송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소록도병원장이 들었습니다. 병원장으로서 깊은 고민을 하다가 드디어 결정을 합니다. 앞으로 제비선창을 폐쇄하고 직원들이 이용하는 부두를 한센인들도 함께 이용하기로 말입니다. 사실 이것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엄청난 정신사적 변화입니다. 우리의 고정관념이 확실히 깨지는 순간입니다. 이제 의사든 간호사든 환자든 육지에 나갈 때는 같은 배를 타고나가기 때문입니다. 같은 배를 탄다는 것은 평등을 의미하고 형제를 의미합니다. 운명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곳 환우분들은 제비선창 폐쇄를 교황님 선물이라고 합니다.

사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소록도 방문은 소록도 정신사의 새로운 전환점이었습니다. 소외되었다고 생각되었던 섬이 교황님 방문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이곳 환우분들은 교황님 방문 자체가 치유로 다가왔습니다. 버림받음의 아픔을 겪은 사람은 이 방문의 의미를 알아듣습니다. 개신교 신자들마저 목사님의 그 안타까운 선언 즉 ‘마귀의 두목이 왔으니 밖에 나가지 말라’라는 말에도 밖으로 나왔고 교황님의 따뜻한 미소와 안수를 받았습니다.

소록도에서 가장 먼저 교황님 안수를 받은 사람은 목사님 말을 어기고 밖으로 나왔던 개신교 신자들이었습니다. 종교와 사상을 떠나 상처 입은 이들이 위로받는 날이었습니다. 교황님 방문 이후로 소록도에 자원봉사자가 찾아오기 시작하였고 정부지원도 많아졌습니다. 잊혀 진 섬이 아니라 이제 인생의 의미를 전달해주는 섬이 되었습니다. 소록도에서 보좌신부로 있을 때 교황님의 사망소식을 듣고 신자들과 장례 미사를 봉헌하는데 청원의 기도 시간에 한 신자가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부모도 우리를 버렸고 친척들도 우리를 버렸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제자인 교황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고 찾아와 주었습니다. 그 교황님이 이제 당신한테 갔으니 잘 봐 주십시오.”

감동이었습니다. 이래저래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은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