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지니 “김장을 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바빠진다. 여느 해처럼 정성들여 김장을 했건만, 웬일인지 지난해 김치는 봄이 되기도 전에 물러져버렸다. 간장에 비벼 먹어도 한두 끼야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몇 달 동안 무른 김치를 먹어야하는 건 고역이었다. 몇 주 전부터 날을 잡아 배추와 젓갈은 마트에서, 고춧가루와 양념은 고향에서 조달하고, 하루 전날 양념을 버무리고 절임배추는 체에 밭아 물기를 빼어두고… 관혼상제 못지않은 계획을 세워 담근 김치가 애물단지가 되고나니, 버리기에는 아깝고, 두고 먹기에는 짜증나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퇴근길 버스에서 김치가 무르는 이유는 중국산 고춧가루 때문이라는 TV보도를 보게 되었다. 도중에 내려 끝까지 볼 수는 없었지만 대충의 내용인즉, 색택만 좋은 중국산 고추가 제 기능을 못해 한두 달도 못가 김치를 무르게 한다는 것이다. 고춧가루는 아내가 조달한터라, 조심스레 얘기할 노릇이었건만 여름내 무른 김치를 먹어야했던 억울함이 이성을 제쳐 소리치게 했다. “그게 결국 당신이 가져온 고춧가루 때문이라잖아”.

김치는 이미 물러졌고 원인이야 고춧가루였든 배추였든 뭐 그리 중요한 일이랴만, 말 한마디 잘못하는 바람에 몇 주 동안은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억울해진 마음에 다시 찾아보니 김치가 무르는 이유는 한 두 가지가 아니란다. 희아리, 즉 탄저병 등으로 무른 고추를 말려 희끗희끗하게 얼룩이 진 고추를 쓰거나 중국산과 섞인 고춧가루를 쓴 경우다. 압축초라 불리는 색이 진한 중국산 고춧가루를 30%만 섞어도 일반인은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고 한다.

결구가 덜되거나 화학비료로 속성으로 키운 배추도 원인일 수 있으니 비닐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3달 이상 키운 배추가 좋겠다.

배나 사과 등 과일을 넣으면 초기 김치 맛은 좋아질 수 있지만 산화를 촉진시켜 쉽게 물러질 수 있으니 많이 넣지 않아야 한다.

온도가 높은 욕실에서 따뜻한 소금물에 적셔 배추를 절이지 말고, 베란다나 실외에서 절이되, 화학조미료와 과다한 양념, 간수를 덜 뺀 소금이나 중국산 소금은 삼가는게 좋다. 잘 담근 김치라 해도 숙성을 위해 실온에 너무 오래두거나, 탑 탤런트가 광고하는 김치냉장고라도 온도설정을 잘못하면 물러지게 마련이다.

결국 맛있는 김치를 일년내내 먹을 수 있는 비결은 내가 직접 재배하여 담거나, 너무너무 잘 아는 친지가 보내준 것이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믿을 수 있는 곳에서 구입하는 것뿐이니, 다소 귀찮고 비용이 들더라고 원산지며 제조일, 함량비율 등 표기사항을 확인, 또 확인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