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고사의 마당엔 단풍이 ‘꽃비’를 내리고 붉은 감나무엔 새들이 날아와서 한바탕 잔치를 벌이는 찬란한 아침입니다. 나무 밑에는 수북이 쌓인 오색 단풍잎들이 모여서 화려했던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듯 정겹습니다. 갑자기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 낙엽들을 데리고 허공으로 또 다른 여행을 떠나갑니다.

지난주에는 중국 강서성 대웅산 백장선사(百丈禪師)에서 열렸던 한중일 세계 선차대회를 다녀왔습니다. 대웅산은 이름처럼 웅장한 산세를 자랑했고, 백장선사는 천 겹의 연꽃잎으로 장엄하게 만들어진 작은 봉우리들이 조화를 이룬 참으로 아름다운 도량이었습니다.

신라말에 도의국사는 37년간 유학을 마치고 마조선사의 제자인 서당지장선사에게 조사의 심인(心印)을 인가받아 귀국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마조문하의 세준족 가운데 한 사람인 백장선사를 찾아가서 거듭 인가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백장선사는 “중국의 선법이 모두 동국으로 간다”라고 탄식을 했으니 도의국사의 수행력이 마침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종가인 가지산파(迦智山派)를 이루고 오늘날 조계종으로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대웅산 백장선사를 방문하니 참으로 감개무량하였습니다. 특히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행다법(行茶法)이 백장청규(百丈淸規)에서 처음 시작되었기에 이번 행사는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선과 차가 만나기 전에는 차약이라는 말이 있었듯이 차는 건강에 좋은 기호식품이었지만 차가 선을 만나서 수행자들의 잠을 쫓고 정신을 맑게 하는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반사라는 말이 있듯이 밥 먹고 차 마시는 일상사 그대로가 수행이 되고 더불어서 일체 일상사 행위를 통해서 해탈 삼매를 성취하도록 청규를 제정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수행자들이 차 마시는 행위를 선차라고 하였으며, 선차일여(禪茶一如)라는 새로운 수행정신으로 정립되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선차는 이렇게 중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 차가 그간 끊어졌던 역사와 전통을 새롭게 정립하여 다시 중국천하에 알리고 해마다 행사의 주최가 되어 한중 문화교류의 새로운 마당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던 백장선사는 선종의 성립사에서 보면 최초로 선원의 청규를 제정하여 오늘날 선원의 토대를 세우신 분입니다. 또한 철저하게 이 같은 정신을 실천하셨던 분입니다. 말년에 이르러 스승의 노역을 안쓰럽게 여긴 제자들이 농기구를 숨겨버리자 하루 동안 먹지를 않았다는 일화는 선가의 아름다운 가풍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선종이 독립된 공간을 이루기 전에는 율종의 사찰에서 동거하였지만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나서는 새로운 청규가 필요했습니다. 때문에 백장선사는 청규를 제정하여 스스로 모범을 보였습니다.

지난봄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사회 각 분야마다 질서가 무너지고 기강이 해이해져 언제,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선사의 가르침은 지금 불안한 상황에 서있는 가정과 직장에서 자기 직분을 다하고 있는지와 같은 자기 반성을 할 수 있는 자기 점검의 나침반이 되어야 합니다.

먼 인생의 여정에서 자기점검의 나침반을 가진 나그네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아 언제나 당당하게 길을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