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원불교 북광주교당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북광주교당은 원광어린이집과 함께 있었는데 제가 여러 가지 일들을 도와드리고, 종종 점심을 먹으러 가기도 했었지요. 그날도 제가 점심을 먹으러 갈 때였습니다. 2층이 식당이고, 그 옆에 7세반 교실이 있었는데 한 아이가 교실 문앞에 서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가던 저는 그 아이에게 “안녕”하고 인사를 했고, 그 아이도 “안녕하세요. 교무님”이라고 예쁘게 인사를 하더군요. 그리고는 교실로 뛰어들어가 “나 교무님이랑 만났다!” 하고 큰소리로 떠들면서 교실 내에서 자랑을 하고 다니는 것이었어요.

제가 무슨 유명인사도 아니고 저를 만난 것이 얼마나 큰 자랑이라고 아주 큰 목소리로 자랑하는 아이의 순수한 모습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주 가끔 보는 사이도 아니고 매일 보는 사이인데 어떻게 저렇게 반갑게 인사하고 그것을 자랑처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건 아마 아이들이 모든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기보다는 경이로움과 놀라운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는 대부분 하루하루를 그냥 덤덤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곤 살아갑니다. 죽은 듯 잠들어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아침에 일어나게 되는 것도, 저절로 숨을 쉴 수 있는 것도, 심장이 쿵쿵 끊임없이 뛰는 것도, 손바닥에 흐르는 따듯한 온기도 모두 그저 나에게 당연한 일뿐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지요.

‘입이 똥꼬에게’라는 동화책이 있습니다. 어느 날 입은 눈, 코, 귀, 혀, 손, 발 등과 서로 자랑을 늘어놓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하지만 입은 지독한 냄새가 나고 만날 똥을 싸고 방귀를 뀌는 ‘똥꼬’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똥꼬’가 없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똥꼬’가 없어져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맛있게 먹은 음식들이 소화된 뒤 소장을 거쳐 대장으로 갔다가 나갈 곳을 찾지 못해 입으로 음식물들을 토하고 말았습니다. 입은 정신을 잃었었다가 깨어납니다. 그리고 꿈이었던걸 알게 되면서 ‘똥꼬’의 고마움을 깨달았다는 내용의 동화입니다.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사소하게 누리고 있는 이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놀랍고 경이롭고 고마운 일인가요? 만약 무엇무엇이 없다면, 만약 무엇무엇이 내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하나하나 꼼꼼히 느끼며 생각해보면, 우리가 평소에 당연하게 여기던 숨 쉬고, 세상을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 그리고 때로는 하찮고 귀찮게 느껴진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군대에서 종교활동을 하며 군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그들이 가장 그립고 간절하게 느끼는 것은 자유에 대한 갈망과 가족에 대한 소중함입니다. 입대 전에는 그렇게 누리고 살던 것인데 잃어버리고 나니 그 소중함과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누리는 많은 당연한 것들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것들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 당연한 것을 누리지 못해 괴로움을 받기도 합니다. 아주 흔하고 당연하지만 없어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귀하고 소중한 것들이기도 합니다.

내 삶에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고,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의 삶은 경이로움과 더욱 밀도 있는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