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벌써 보름이 지났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처참한 해였습니다. 다시 한 번 잘못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상태를 간단하게 짚어 보고 올 한해는 근본을 바르게 세우는 국민이 되기를 바랍니다.

매년 연말이 되면 그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를 선택해 발표하는 것이 어느덧 하나의 문화가 되어가는 듯합니다. 2014년은 워낙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던지라 올해는 어떤 말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힐까 기다렸는데,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선택되었다는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지록위마는 사기(史記) ‘진시황본기’에 나오는 사자성어입니다.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가 태자 부소를 죽이고 어린 호해를 황제로 세워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뒤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며 “좋은 말 한 마리를 바칩니다”고 거짓말한 것에서 유래합니다. 호해는 “어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오”라며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고, 조고의 횡포를 두려워한 대부분의 신하들이 말이라고 대답하게 됩니다.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을 기억해 두었다가 죄를 씌워 죽였다고 합니다.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처음에는 윗사람을 농락하는 것을 일컫는 뜻이었으나, 지금은 흑백이 뒤바뀌고 사실이 호도되는 것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2014년은 다른 어떤 해보다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많았습니다. 세월호 사고, 청와대 문건유출사건,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까지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든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던 한해입니다. 또한 지난해 만큼 본질이 사라지고 지엽(枝葉)만 난무한 한해도 드물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세월호의 아픈 기억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치유가 선행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법률 제정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만 남아 정작 본질은 기억에도 없는 한해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청와대의 정책결정의 난맥이나 국민과의 소통 부재라는 본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문건을 누가 유출했느냐’하는 지엽적인 문제에만 묻혀 흐지부지 사그라지는 청와대 문건유출사건이 그러했습니다. 재벌로 대표되는 상류층 사람들의 잘못된 의식구조나, 기업을 사유재산으로 보는 잘못된 기업문화를 질타해야할 사건의 본질은 묻혀버리고 개인의 잘못된 행동에만 초점이 맞춰진 ‘땅콩 회항’ 사건도 그러했습니다.

잘못된 점을 명명백백 밝혀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 대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일탈적인 행동이나 과정의 지엽적 문제만을 부각시켜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응급처치만 남아 떠도는 이상한 사회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몇몇 희생양들을 내세워 사건을 무마하고 마는, 말 그대로 미봉책(彌縫策)의 사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고는 똑같은 양상으로 재발하고, 소통은 불통이 되고, 소위 ‘갑질’이 난무하는 사회는 변함이 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변화가 급격한 현대사회에서 정체는 후퇴와 같은 의미일 텐데, 우리 사회는 개혁(改革)은 고사하고 개선(改善)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개악(改惡)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까운 마음 감출 수가 없습니다.

지록위마를 생각하다 문득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끝은 왜 보고 있나”라는 성철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말씀도 근본적으로는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문제에 얽매여 진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함을 경계하는 뜻으로 생각한다면 현재의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경구(警句)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성철 스님의 말씀을 굳이 사자성어로 바꾸자면 ‘지월관지(指月觀指)’ 정도가 될까요. 손가락에 미혹(迷惑)되지 않고 달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사회, 본질을 꿰뚫어 잘못된 점을 과감히 개선할 수 있는 사회, 지월관월(指月觀月)할 수 있는 사회가 2015년에는 꼭 이뤄질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