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신자들, 특히 어린아이들은 저에게 자주 묻습니다. “신부님은 왜 신부님이 되었어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우스갯소리로 말해줍니다.. “실연을 당해서…, 멋져보여서…, 한 여자 구원해 주기 위해서….”

“하느님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요?” “…….”

저는 천주교를 중학교 때 처음 알았고 고1 때 세례(천주교 신자가 되는 예식)라는 것을 받았습니다. 요한보스코(살레시오회 창시자, 흔히 돈보스코라 불림)라는 이름도 받았습니다. 그때 제 마음은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에 끌렸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커져만 갔습니다. 제 마음은 어떤 울림으로 서서히 점차 강하게 이끌렸습니다. 그것은 저를 위한 삶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 눈에 보인 것이 외국에서 오신 선교사 신부님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저거구나, 저렇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앞길을 막는 복병이 있었습니다. 저는 삼대독자였습니다. 비록 가난하게 살아가는 시골에서 자랐지만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사랑만은 독차지했습니다. 그렇게 귀한 아들이 천주교의 신부가, 그것도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신부가 되면 대가 끊기니 어느 부모가 좋아하겠습니까. 부모님은 특히, 아버지는 완강하게 반대하셨습니다. 이유는 ‘평범하게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대를 끊어가면서 그렇게 불행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자식 사랑의 마음이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저의 방황의 시간은 시작되었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딱 맞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부모님이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어머니가 먼저 세례(로사리아)를 받으시고, 1년 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가 세례(로마노)를 받으셨습니다. 아들과 같은 믿음을 갖고자 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후에 남들보다는 조금 늦게 신학교(광주가톨릭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천주교 광주대교구의 신부입니다.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셨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는 ‘자신이 선택해서 한 번 신부 되었으니 죽을 때까지 하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신부가 되기까지 걸어온 길은 때론 지치고 힘들고 방황하며 때론 돌아가기도 하는 지극히 평범한 길이었습니다. 신부인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저는 지금도 한 가정의 삼대독자이고 한 부모님의 자식입니다. 형제자매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부가 되는 그 삶의 과정은 이런 것들로만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저라고 하는 존재가 부모로부터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제가 왜 신부가 되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천주교 신자가 되면서 내 마음 안에 울렸던 그 울림은 지금의 저를 있게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제 삶을 이렇게 이끌어 왔습니다. 그리고 또 이끌어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 인간의 존재(생명, 삶)는 신비 그 자체 입니다. 단순히 물리적, 생물학적, 의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은 헤아릴 수 없는 신비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나’는 자신에 대해 알고 생각하고 고통과 기쁨, 사랑과 미움 등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단지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과 인격을 지니고 삶의 의미에 대해 묻고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또한 해와 별과 달과 꽃을 보면서 감탄할 줄 알고 사람들의 작은 일에 감동할 줄 아는 존재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존재는 신비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이끌리며 무의식적으로 의지하기도 하며 살아갑니다. 내 마음의 깊은 곳에서 울리는 마음의 소리도 듣습니다.

우리의 삶은 인간적이면서도 신비의 삶이기도 합니다. 인간적인 것 너머의 신비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신비로 볼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신비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눈을 지닌 사람입니다. 반대로 그 신비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오직 인간적인 눈으로만 세상과 사람을 봅니다. 그래서 사람과 자연을 대상화하고 착취하고 억압하고 짓밟습니다. 신비의 삶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모름지기 신비의 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신비로운 삶을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의 제목인 ‘나는 왜 신부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은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여러분 자신이 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