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로 살만 한가요?”

어느 지인의 질문입니다.

“살만합니다.”

세상살이하는데 큰 불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존중과 존경도 따라옵니다. 살 수 있는 집이 있고 제때에 먹을 양식이 있고 매달 월급도 받습니다. 자신의 취미생활도 할 수 있습니다. 옛 선배 신부들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달걀이 먹고 싶어서 신학교(가톨릭대학교)에 갔다고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선교사로 온 외국인 신부들이 신자 가정을 방문하면 신자들은 신부의 방문이 영광이라며 쌀밥에 있는 반찬 없는 반찬 마련하고 닭 잡아서 한 상 가득 차려냅니다. 아이들은 밥상 발치에서 신부님이 행여나 남겨주실까 목을 빼고 기다린 적도 있었습니다. 배고프고 힘든 그때조차 신부들은 그렇게 대접받고 살았습니다.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신부란 이름만으로 존중받고 사랑받고 살아갑니다.

저는 이십대 중반에 신학교(광주가톨릭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신학교 생활은 참 힘들었지만 행복했습니다.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철학, 신학 등등. 공부는 무척 힘들었지만 신부로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참 봉사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신부로서 멋지게 삶을 펼쳐보리라 다짐했습니다. 6년(지금은 7년)의 신학교를 마치고 마침내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깎듯이 ‘신부님, 신부님’하고 인사합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먼저 먹으라고 줍니다. 자리에 앉아도 미리 정해진 좋은(?) 자리에 모십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한번은 보좌(신자가 많은 성당에는 주임신부, 보좌신부가 있음)를 마치고 바닷가에 있는 성당에 첫 주임이 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바닷가인지라 낙지 잡고 굴 따는 분들이 있어서 잡기만 하면 가져오니 입에서 낙지 냄새와 굴 냄새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 간 성당에서 ‘신부님은 뭘 좋아하세요?’하고 묻기에 ‘닭고기를 좋아합니다’라고 했더니 가정방문 때마다 삶고 튀기고, 어떤 날은 닭고기로 두 끼를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붙여진 별명이 ‘김닭’입니다. 잊을 수 없는 사람의 정입니다. 황송하게도 지금도 그런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신부 노릇도 할 만합니다.

그런데 세상살이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데도 살만하지 않습니다. 속된말로 뭔가 2% 부족한 느낌입니다. 왜냐하면 신부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조건이 채워지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흔히 ‘신부도 사람이다’라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엘살바도르의 순교자 로메로 대주교도 감옥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도 인간이다.’ 인간 맞습니다. 나약하고 부족하고 육신을 취한, 물질로 보면 한 순간 시들어가는, 먼지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약한 존재인 인간은 또한 강하고 품위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필요한 그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늘 뭔가에 갈증을 느끼는 하늘의 존재입니다. 어린 시절에 선생님은 화장실도 안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만큼 선생님을 이 세상의 잣대로는 잴 수 없는, 품위 있고 소중한 존재로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서 두 부류의 사람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첫째는, 이 세상이 주는 물질의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물질적 가난은 사람의 존재를 땅에 묶어둡니다. 하늘의 존재가 되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으로서 지닌 품위를 지키도록 나누고 베풀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오직 이기적인 탐욕과 자신의 출세와 영화를 바라면서 금수와 같은 모습으로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이들은 너무 애처로운 존재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것조차 누리지 못한 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무관심했던 마음, 그리고 이기적인 탐욕으로 물든 이 세상을 향한 예언자의 목소리에 적극 동참하지 못한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을 담아 이제 처음 질문에 다시 답을 해야겠습니다.

“신부로 살만 한가요?”

“부끄럽게 살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