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을 사찰에서는 해우소라고 부릅니다. 근심을 덜어버리는 곳이라는 뜻이 되겠지요. 하지만, 요즘은 사람 따라 그것조차 마음대로 안되어서 근심을 버리는 곳이 아니라 근심을 쌓고 나오는 곳이 되기도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정말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치원, 어린이집에 다니는 유아들부터 시작하여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들까지도 무엇에 쫓기는지 다들 안부로 ‘정말 많이 바쁘시죠’라고 물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더욱더 빠른 전송속도로 늘 업그레이드되고, 다양한 디지털 기기들은 빠른 성능을 무기 삼아 광고를 내보냅니다. 음식도 차 안에서 바로 받을 수 있게 빨라졌고, 홈쇼핑으로 구매한 물건들은 사기가 무섭게 우리 앞에 도착하곤 합니다.

그리고 우리 문명도 정말 빠르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문명의 진화를 알리는 가장 상징적인 첨단 디지털 기기 중 하나가 스마트폰입니다.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9년부터였으니 아직 채 1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보급률은 80%를 넘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이에 비례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더욱 여유가 없어진 듯 보입니다. 어린이들과 학생들은 학원에, 대학생은 취업준비에, 직장인들은 근무에 자기계발까지. 더욱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도 한가로이 주변을 둘러보는 사람보다는 그 여백의 시간에 정보와 재미를 채워넣으려 하는 모습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늘 무언가를 하고 살아가며 그 무언가가 없어지면 심한 허전함과 공허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 날 저도 그런 모습이더군요. 원불교의 성직자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현대문명의 거대한 조류에 휩쓸려 삶에 빈 공간을 꽉꽉 채운 채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자연스럽게 가는 화장실 그곳에서조차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아 정말 이제는 용변만 보질 않는구나. 용변을 보며 무언가를 같이하고 있구나. 이제 이 화장실에서조차 마음을 쉬게 해줄 여유가 사라졌구나. 마음이 늘 쪼개어 져서 순간마다 내 삶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있구나 반성했습니다. 볼일을 보며 다른 것을 또 하고 있으니 근심이 제대로 덜어질 리가 있겠습니까.

해우소에 가서는 해우소에서 할 일이 있고, 직장에서는 직장에서 해야할 일이 있고, 집에서는 집에서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삶의 여러 가지 일들을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뒤죽박죽 섞어서 이 일을 할 때에 저 일을 생각하고, 저 일을 할 때에 이 일을 생각하는 등 내 눈앞에 삶에 대해서 집중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아무리 바쁘고 할 일이 많은 삶이라도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 바로 내 마음이 머물러야 할 곳이고 내가 집중해야 할 곳이라 생각합니다. 이루어졌으면 하고 바라는 일, 이루어질까봐 두려운 일,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일들을 걱정으로 가지고 와 내 삶을 흔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해우소에서 볼일 볼 때 그 순간 집중하듯이 내 삶 순간마다 현재에 집중한다면 뱃속의 근심도 사라지겠지만 마음의 번뇌도 함께 버려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