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8년 만에 찾아온 3월의 한파를 유난스레 떠드는 언론 보도를 보면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구절이 이리 절절한 적이 없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오랑캐의 땅으로 억지 시집을 가야했던 왕소군에게는 봄이 와도 봄으로 느껴지지 않는 절절한 아픔이 있었습니다. 다시 포근한 햇빛이 고개를 내밀며 완연한 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좀처럼 봄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언론 보도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무성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할 또 다른 슬픔이 아직도 진행중임을 돌아보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달 16일이면 세월호가 침몰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지만 이 날을 기억하고 있는 국민은 얼마나 될지 가슴이 먹먹할 뿐입니다. 아직도 시신마저 찾지 못한 실종자가 9명이나 되고, 실종자 유가족들이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선체 인양 문제마저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만 미뤄지고 있으니, 비록 유가족과 일면식도 없는 납자일 뿐이지만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일 겁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한결같지는 않은지 오히려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으니 사람의 도리가 어찌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경악스러울 따름입니다. 단식을 하고 있는 유가족들 앞에서 피자를 먹으며 포식하는 해프닝을 벌이고, 희생자들을 어묵에 은유해 조롱하고, 심지어 빨갱이로까지 몰아가는 저 사람들이 작년에 노란 리본을 달고 세월호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고 울먹이던 우리들의 모습들이었는지…. 과연 무엇이 사람들을 저렇게 바꾸어 놓았는지 참담한 심정입니다.

불교에서 가르치기를 중생이 해탈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세 가지 큰 번뇌가 있는데 이를 삼독(三毒)이라고 합니다. 탐욕·진에·우치를 줄여서 탐·진·치라고도 하며, 이 세 가지 번뇌가 중생을 해롭게 하는 것이 마치 독약과 같다고 하여 삼독이라고 합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이 세 가지 문제만 해결한다면 해탈에 이르는 것은 여반장(如反掌), 즉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이란 이야기이지요.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니 중생이 가진 삼독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난 예도 드물다고 느껴집니다. 유가족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논의되자 윤리 도덕에는 안중에도 없는 이념의 잣대와 그 혜택에 대해 시기하고 질투하고 성내게 되니 그것이 잘못된 탐냄과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요, 가족을 잃은 슬픔을 헤아리지 못하고 어쩌면 그것이 나의 일이 될 수도 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호가 세월이 지나가면 잊힐만한 하나의 사고가 아니라 안전에는 불감(不感)하고 내 한 몸의 이익에는 민감(敏感)한 현대의 중생들이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이듯이, 나만의 이익을 헤아리며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그 행동 하나하나가 또 다른 세월호를 만들어 내는 어리석음이란 것을 깨닫지 못하는 중생들의 번뇌가 칼바람처럼 피부에 와닿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봄은 아직 먼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실종자 유가족 부녀가 팽목항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삼보일배의 먼 여정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고를 야기했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과 벌써 노란 리본을 까마득한 옛 기억으로 흘려보내고 있는 이 땅의 많은 중생에게도 봄은 아직도 요원(遼遠)한 일이기만 하니 올해처럼 춘래불사춘이란 말이 절절했던 적이 없었던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