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화살과 같다는 말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욱 실감이 나는 비유인 것 같습니다. 새해를 맞은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오월에 들어섰으니 잠시 곁눈을 팔았다간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화살처럼 지나가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살다 보면 작지만 소중한 것, 혹은 바쁜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게 느리게 흘러가지만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들을 잊고 사는 우를 범할 경우가 종종 생기게 됩니다.

어제는 볼 일이 있어 시내에 나갔다가 참 귀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인도블록 사이 보이지도 않는 틈새를 뚫고 민들레 한 줄기가 잎을 피우고 홀씨를 매단 채 바람이 불어 씨앗을 멀리 날리기만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무심한 풍경일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의 인고(忍苦)와 풍상(風霜)을 알만한 나이의 사람에게는 그저 무심히 지나치기 어려운 모습이었습니다.

한 줌 흙도 부족한 인도블록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잎을 피우고 홀씨를 매달기까지 민들레가 겪었을 고난이 예사롭지가 않았을 터인데 그 모든 역경을 헤치고 저리 아름다운 자태를 갖추었으니 세상의 진리가 어쩌면 저 한 송이 민들레 안에 담겨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들레 홀씨 한 줄기를 피우는 것이 무에 그리 특별할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외부에서 무심히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일 따름이고,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서 매서운 겨울을 견뎌내고 단단한 블록 사이 한 줌의 흙을 찾아 뿌리를 뻗어 싹을 틔우고 오가는 행인들의 발길 속에서도 덤덤하게 잎을 펼쳐 꽃을 피우기까지 민들레가 겪었을 고난을 생각한다면 보잘것없는 꽃송이 하나, 홀씨 하나라도 소홀할 수가 없어 보입니다.

작고 미미한 것이라 소홀하기 쉬운 세상입니다. 화려하고 아름답고, 또는 빠르고 새로운 것들만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그에 반하여 수수하고 평범하고, 또는 느리고 익숙한 것은 소홀하기 쉬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한걸음 물러나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수수하고 평범하고 느리고 익숙한 것들이야말로 우리 주변에 항상 있는 것이고 없어서는 안 될 것들입니다. 입맛을 돋워주는 평범한 봄나물들이 그렇고, 때가 되면 흐드러지게 피어나기에 익숙하지만 봄이 돌아왔음을 온몸으로 알려주는 개나리 진달래가 또 그러합니다. 평범하고 익숙하다 해서 결코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님은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흔히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일컫습니다. 일년 중 가장 많은 종류의 꽃들이 피어나는 때이고 새로 일어난 생명의 기운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계절이라 그 화사함이나 생명의 싱그러움이 최고조에 오를 때이니 계절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썩 어울려 보입니다.

그러한 화려함 뒤에는 언제나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던 평범한 들풀들의 고난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꽃들의 아름다움이 몇 배로 더 가슴에 와닿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것들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사실, 평범하고 익숙하기에 지나쳐 왔던 사실, 이는 세상사 모든 일에 그대로 투영되는 진리이기에 감히 허투루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따져보면 세상사가 모두 이와 같으니 꽃샘 추위가 매서울수록 봄꽃의 화려함이 더 선명하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사람일수록 그 성공이 더욱 각광을 받게 되지만 그 내면에는 하나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고생했던 모든 이들의 노고가 스며들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 믿습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으셨으나 그 바탕에는 6년간의 긴 고행이 있었고 부처님께 생로병사의 실상을 보여준 수많은 중생들의 보이지 않는 공덕이 있었음을 기억한다면,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민들레 한 송이가 결코 평범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민들레 한 송이야말로 계절의 여왕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이라 생각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