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 복판에 이런 곳이 있었네.”

올 겨울 처음 이곳에 들렀을 때 든 생각이다. 광주에서 가장 활기 넘치고 시끌벅적한 공간 중 하나인 양동시장 바로 인근에 위치한 조용한 절집 광제사. 도로에서 불과 몇십미터 떨어진 공간인데도 차 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입구에서부터 새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낡은 손때가 묻은 한옥 건물, 수돗가의 작은 동자승. 크고 작은 나무들과 고무 대야에 담긴 연(蓮)들까지 고즈넉한 분위기다.

주차장에서 광제사 오르는 길에는 온갖 꽃이 피었다. 동백, 목련, 진달래가 지나간 자리에 지금은 철쭉과 붉고 하얀 접시꽃이 한창이다.

절집 마당에 들어서면 탁 트인 공간 앞으로 광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경관을 해치는 생뚱맞은 금호생명 건물이 모습이 아쉽기는 하지만 마음이 평온해진다. 대웅전 연등도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여느 절에서 볼 수 있는 흔히 볼 수 있는 알록달록 연등이 아니다. 등을 켜면 초록색 연꽃이 새색시처럼 얼굴을 내민다. 잔잔한 느낌의 감성적인 연등이다.

도심 속 사찰 광제사는 올해 창건 12년이 됐다. 어쩌면 오래된 공간을 찾아 이야기기를 듣는 이 시리즈와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일수도 있다. 광제사를 다룬 건 대웅전에 얽힌 사연 때문이다.

광제사의 대웅전은 여느 신설 사찰 처럼 화려한 단청으로 꾸며져 있지 않다. 낡은 한옥 느낌이다. 덧대어진 나무 문과 격자 무늬 창 등 누군가 지친 삶을 뉘었을 주거 공간을 그대로 가져온 곳이다. 대웅전 옆 사무실로 쓰는 곳 역시 마찬가지다.

대웅전은 100여년 전 지어진 한옥이다. 건물 주인은 유은학원을 설립한 광주 지역 만석꾼 고(故) 최선진 선생. 그는 올해 개관 80년을 맞은 광주극장 설립자이기도 하다. 당초 한옥이 들어선 곳은 광주시 동구 금남로 5가 덕영빌딩 인근이었다. 1960년대 금남로 확장 공사가 진행되면서 인근 건물이 모두 철거됐고, 7채로 구성돼 있던 한옥 가운데 2채를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이후 지난 2003년 기부를 통해 ‘광주 사람들을 다 편안케 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아 광제사(光濟寺)가 되었다.

현재 대웅전으로 사용하는 한옥 본채는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광주를 방문했던 몽양 여운형 선생과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다 간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또 한채는 사무실과 신도나 방문객들이 편안히 차 한잔 하며 머물다 가는 공간으로 활용중이다.

1993년 화엄사에서 출가한 주지 석두 스님은 천은사에 머물 때 최씨 가족과 인연을 맺은 후 광제사 창건 작업을 진행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원시림같았던 공간을 일일이 다듬고 나무를 가꿨다. 뒷동산엔 아이들이 따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살구, 자두, 복숭아 나무를 심었다. 어디서든 꽃냄새가 풍겨났으면 싶어 수많은 꽃을 피웠다. 기존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꽃, 나무와 어우러져 지며 광제사는 ‘꽃보다 아름다운 절’이 됐다.

도시민들에게 힐링을 제공하는 사찰로 명성을 얻고 있는 무각사가 세련된 감각의 현대적 느낌이라면 광제사는 소박한 기품이 엿보이는 절집이다. 아담하지만 찬찬히 둘러보면 올망졸망 눈에 담고 싶은 풍경이 많다.

광제사는 신자들을 위한 절집이기도 하지만 광주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광제사를 찾게 된 것 역시 문화 행사 덕이었다. 광제사의 ‘사계 음악회’다. 지난 겨울 바이올리니스트 임재홍의 독주회가 대웅전 법당에서 열렸다. 이자이의 ‘바이올린소나타’ 전곡 연주와 함께 앙코르로 들려준 파가니니의 곡까지 아름다운 꽃등과 어우러진 공연 현장은 색다른 감성을 자극했다.

석탄일 즈음에 열린 봄 음악회는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가 5월의 꽃을 피웠습니다’라는 멘트로 시작됐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열린 연주회에서는 무지크바움 챔버 오케스트라가 다양한 음악회를 선사했고, 절밥과 차를 함께 나누며 추억을 만들었다.

“지난 겨울 음악회가 광제사가 세상 밖으로 나간 첫날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광주 사람들 다 행복한 공간, 모든 이들의 마음의 안식처였으면 좋겠습니다. 절을 기부하신 분들의 의견이기도 하구요. 사람들 사이 마음의 문을 여는 게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힘든 이들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게 종교기도 하구요. 불교 뿐 아니라 모든 종교가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문화를 퍼트리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광주 문화인들이 어우러지고 광주의 재능 있는 사람들이 꽃을 피우는 공간이 됐으면 싶습니다. 정원에 와서 좋아하는 차와 음식 먹고, 작품 전시하고 중고생들도 연주하는 그런 소박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매화 천지가 되는 봄날 밤에 모여 함께 꽃구경도 하고.”

‘주지라기 보다 절 지키는 현장 소장’이라고 말하는 석두 스님은 광제사는 동네, 지역 사회가 주인이라고 말했다.

문화 강좌도 운영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에는 화가 이형우씨가 미술사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우쿠렐레 강습도 하고 있다. 또 가을에 문을 열 작은 북카페 공사도 시작했다. 카페에서 대웅전으로 향하는 소로를 걷다보면 아름다운 풍경이 눈을 잡는다.

햇볕 따사롭던 어느 봄날, 석양이 물들 즈음, 깜깜한 밤 어느 때 들러도 좋았다. 오늘, 이른 아침에 찾은 광제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무국장은 비오는 날의 광제사를, 커피를 내려주던 신도는 단풍드는 광제사를 추천했다. 광제사는 언제든 찾아가면 당신에게 차 한잔 건네며 반겨줄 거다. 차 한 마신 후 수많은 나무가 울창한 뒷동산에 올라 그늘에 한참을 앉아 있다 오시라. 하루 해가 저무는 모습도 보시라.

‘광제사 뜰에서 한결 숭고하게 다가오는 무등이 서서히 어둠에 잠기는 모습을 바라보며 빈 필하모닉의 여름음악회가 열리는 쉔부른 궁전보다 광제사의 소박한 뜰이 아름다웠던 건 색색의 연등이 우리들 마음 속 꽃등으로 자리해 무명을 밝혀주기 때문일 거’라고 음악회에 다녀온 독자 최산호씨가 보낸 메일 내용이 조금은 이해될지도 모르겠다. 광제사 062-225-7505.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사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