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은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가르치신 말씀을 제자들이 기록해 놓은 것을 그 근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세상 만물의 이치를 가르치신 주옥(珠玉) 같은 말씀들이 불경이니, 불교를 믿는 불자들은 전범(典範)으로 삼고 이를 따르고 지키려 노력합니다.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도 불경 한 구절 정도는 들어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중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불경 구절은 아마도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라는 구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판타지 영화에서 마법사가 마술을 부리기 위한 주문 정도로 기억하고 계신 분들이 많을 텐데 사실은 천수경(千手經)이란 불경의 첫 구절인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천수경은 현재 대부분의 사찰에서 예불을 올릴 때 빠뜨리지 않고 독송하는 불경 중의 하나이며 그 시작인 정구업진언은 해석하자면 ‘입으로 지은 죄를 정화하는 주문’이라는 뜻입니다. 가장 많이 독송 되는 불경의 첫머리가 입으로 지은 죄를 정화하는 주문이라는 점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일국의 총리가 정당치 못한 돈을 받았다는 구설수에 올라 결국 총리직을 물러나야 했었는데, 그분이 이 진언을 알고 있었다면 혹시나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가당치 않은 생각도 슬쩍 해봅니다.

사실 총리가 사퇴까지 하게 된 데에는 그분이 받았다는 몇 천만 원의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억울한 심정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모 기업인이 남긴 메모에 몇억을 주었다고 적혀있는 사람도 여럿 있는데 몇 천만 원을 받은 것으로 의심받는 총리를 먼저 비난하고 파헤친 이유는 아마도 총리 자신의 말이 칼이 되어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이 부당한 돈을 받았다면 목숨을 걸겠다고 했는데 정말 자신의 정치생명을 자르는 칼이 되어 돌아온 셈이지요.

시중에 떠도는 경구(警句) 중에 ‘사람이 귀가 두 개인 것은 주변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라는 것이고 입이 하나밖에 없는 것은 말을 삼가고 조심하라는 뜻’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기보다는 주변의 말을 더 소중히 들으라는 뜻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남의 이야기를 많이 듣되 자신의 말은 신중하게 하라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정치인이든 일반 대중이든 말을 조심하여야 하는 것은 공통된 규범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중적인 주목을 받는 정치인이나 공인(公人)들이 말을 더 조심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다수인의 주목을 받고 있기에 한마디 말의 파급력이 그만큼 더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은 곧 약속입니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이 한 번 입 밖으로 내뱉은 말에는 어떤 형태로든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그러나 이 상식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아마 대부분 공감할 것입니다.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는 세상,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세상은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세상이 아닐까 합니다. 현재의 세상은 법이든, 도덕이든 약속을 세우고 그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으로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깨어진다면 더 이상의 안정과 발전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입으로 짓는 업이 다른 여러 업보다 크고 무서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수천안으로 세상 만물을 돌보시는 관세음보살께서 설법하신 천수경에 첫 번째 구절이 정구업진언인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