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아랍국가들은 군주제이다. 왕의 자손들이 대물림하며 통치를 하고 모든 권력이 왕에게 집중되어 있다. 왕은 수상을 겸하고 150여명의 자문위원들은 의회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왕이 임명한다. 2003년부터는 지방의회 구성원의 절반을 선출직으로 하는 개선안을 실행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이 같은 정치체제를 후진적이라고 비판한다. 쿠테타가 자주 발생하는 아프리카의 어느 국가는 미개한 국가로 여기고, 3대째 세습하며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북한은 국가라기보다 조직폭력배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정치행태를 살펴보면 이러한 후진적 정치현상을 오묘하게 모자이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한심하고 부끄럽다. 우리나라는 3권분립이 되어 상호 견제를 통해 건전한 통치를 하도록 되어있다. 3권 중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고, 국회의원은 각각의 의원 자체가 헌법기관의 역할을 하며 그들 중 국회의장을 선출하여 입법부 수장을 맡는다.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국가의 공정성을 지킨다. 참으로 그럴 듯 하고 OECD국가의 일원으로 부끄럽지 않는 정치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부끄럽고 한심스러울까? 우리가 외신을 통해 정치후진국의 행태에 혀를 끌끌 차듯이 외국인들은 작금의 대한민국의 정치뉴스를 보고 실소를 머금고 있지 않을까? 박 대통령은 3권 분립의 근간을 흔드는 위헌적 국회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동시에 국회법을 통과시킨 같은 당의 유승민대표에게 “내년에 국회의원이 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독설을 퍼부었다. 3권 분립을 주장하는 대통령이 동시에 3권 분립을 흔들었다. 이번 사건 자체만으로 우리나라는 전혀 3권 분립이 되어 있지 못함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대통령만 국민이 선출할 뿐, 나머지 입법부와 사법부는 대통령이 마음대로 임명한다. 국회의원도 현재와 같은 지역주의 지형도에서는 국민이 선출하는 모양새만 갖추었을 뿐 대통령이 공천권 행사를 통해 사실상 임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경상도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강력한 영향력 앞에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에 여야합의를 통해 제출한 법안도 대통령의 불쾌하다는 한마디에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국회의원 배지를 두 번 다시 달지 못해도 소신과 원칙을 지키려는 기개는 그 누구에게서도 찾을 수 없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은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라는 용비어천가를 통해 대통령에게 잘보이려한다.

나는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이 뭉쳐서 유승민의 사퇴를 막아내고 재의를 통해 국회법을 개정할 것을 촉구한다. 상위법의 권한을 무력화시키거나 왜곡시키는 행정부의 시행령에 대해 견제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입법행위를 정당화함으로써 국회가 3권의 한 축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는 역사적 신호탄을 쏘아올려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의 정치철학과 소신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도출하고, 치열한 논리적 토론을 통해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져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몇 차례의 위기관리능력을 통해 이미 검증이 끝난 상황에서도 아무런 대안 없이 달력만 보고 있어야 한다면 그건 우리에게 불행이다. 야당도 내홍이 심하다. 과거 김대중과 같은 지도자가 필요한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극화 다양성이 필요한 시대다. 어느 한 명의 권력자에 의해 국가나 정당이 휘둘린다면 이러한 후진적 행태는 영원히 개선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 나라의 정치수준의 그 나라의 국민수준이라 한다. 간도 쓸개도 심지어 심장도 뇌도 없는 인간의 모습이지만 결코 정치인은 아닌 후보들, 정치철학은 없고 권력자의 총애만 있는 꼭두각시와 같은 후보들을 무관심하게 선출하고 마는 국민의식의 개혁만이 가장 강력한 처방일 것이다. 내 세금으로 월급을 주며 나를 위해 일할 직원을 뽑는다면 절대 이런 지원자를 뽑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