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광주 서구 을)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획득한 득표율은 새정치민주연합 조영택 후보보다 23%나 더 많았다. 이 선거 결과를 놓고 많은 사람들은 광주 지역 유권자들이 조영택 후보만이 아니라 이 지역 국회의원들과 문재인 대표로 대표되는 새정치민주연합을 함께 낙선시킨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호남과 새정치민주연합 사이의 균열 징후는 이미 2012년 대선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호남인들의 몰표에도 불구하고 문 후보가 패배하자 호남인들은 주요 패인을 문 후보의 경쟁력 부족에서 찾았고, 앞으로는 그런 선거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2014년 지자체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광주시장 후보를 전략공천해버리자 시민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이 광주를 이용만 하지, 결코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굳혔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비판적 여론은 무엇보다 이 지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실망감에서 비롯됐다. 이 지역에 토대를 둔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들에게서는 다음 4무(無) 현상이 상기된다. 첫째는 광주정신에 대한 공감도의 부족이다. 둘째는 의정활동의 부진이다. 소위 ‘스타 의원’이 없다. 셋째는 지역발전에 대한 헌신도가 부족하다. 이런 현상은 집권시절인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넷째는 당 대표나 대통령 후보감이 없다. 이 4무(無) 현상의 근본 배경은 경쟁이 없는 선거구도와 관련이 있다. 소위 ‘묻지 마 투표’는 국회의원들에게 유권자가 아닌 당권 주변만을 맴돌게 하여 자신의 실력을 쌓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을 게을리 하게 만들었다.

보궐선거가 끝난 후 신당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새로운 정당이 출현한다면 그것은 전국 정당이든 지역 정당이든 결국 호남에 토대를 둔 정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우려되는 점은 이미 퇴장했거나 퇴출 대상인 정치인들이 신당에 몰려들어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복원·연장하는 구명줄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런 퇴행적 성격의 신당은 호남정치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안 되며, 야당 내에서마저 호남고립화를 낳을 것이다.

신당이 출현한다면 그것은 호남개혁정치 복원에 기여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대대적 발탁을 그 내용으로 해야 한다. 또 하나 비전과 가치가 뒤따라야 한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과 호남은 민주주의와 복지, 평화, 그리고 지역균형발전(호남차별의 시정)이라는 비전과 가치를 토대로 결합했다. 만약 신당이 출현한다면 그것 역시 호남인들이 염원하는 시대적 과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실행의지를 가진 정치세력의 발탁이라는 질적 목표를 우선시해야 한다. 그래야 호남개혁정치의 복원과 전국적 차원에서 야당의 개혁적 성향 및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아직 실체도 없는 신당이 새정치민주연합보다 지지도가 더 높게 나왔다고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실망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는 우려할 점이 없지 않다. 신당에 대한 지나친 감성적 쏠림현상과 또 다른 유형의 ‘묻지 마 투표’가 등장할 가능성이 그것이다. 그렇게 선출된 국회의원은 또 다른 ‘4무(無)’ 현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우리 지역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가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과 새로운 정치결사체, 진보정당, 새누리당 등이 각각 좋은 후보를 추천하여 선의의 경쟁구도를 형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 지역이 정당보다는 국민과 지역에 헌신할 보다 유능하고 정직한 대표자를 맞이할 수 있다. 이 지역에 새로운 개혁적 정치결사체가 출현하고, 동시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런 분위기에 자극받아 환골탈태함으로써 호남에 새로운 정치지형이 형성되면 좋겠다. 지금부터 이 지역에서 호남개혁정치의 복원과 지역의 총체적인 경쟁력 강화, 그리고 한국의 정치문화를 도약시키는 운동과 분위기 조성작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