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김신부, 나야. 며칠 전에 일하다 허리를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었어.”

“그래, 몰랐네. 연락이라도 하지. 허리는 왜 다쳤는데?”

“일하다 삐끗했어.”

“그런데 입원 중에 검사했는데 암수치가 높아서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네.”

“암? 그래, 그럼 검사해야지. 어디서 할 건데?”

“전남대병원. 아무래도 김신부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아서.”

“그래, 고맙다. 가까우니 시간 내서 갈게. 너무 걱정하지마.”

그렇게 무심히 전화를 끊었습니다. 검사가 우선이고 그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걱정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친구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 아내와 헤어진 뒤로 홀로 힘들게 키워왔습니다. 이제는 둘 다 대학생입니다.

검사 당일에 입원해 있는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아들과 딸도 와 있었습니다. 병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너무 근심하지 말고 그 결과에 따라 치료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밥도 못 먹고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김밥을 사서 들려 보냈습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병문안 가서 기도하는 걸 깜박 잊었습니다. 너무 친해서 내 존재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후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다짜고짜 하는 말이 “김신부, 기도 많이 안했지?”

뜨끔했습니다. “왜?”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암이래.”

나는 애써 태연한 척 하면서 말했습니다. “그럼, 치료해야겠네.”

“근데, 자꾸 눈물이 나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씩씩하고 당당하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친구들 한번 보고 싶다.”

“그래, 맘 굳게 먹고 조만간 시간 내서 밥 한번 먹자.”

그렇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있다고 느끼는 친구의 심정은 어떠할까.

이틀 후, 친구들과 함께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눈에 띄게 야위어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당당하던 예전의 모습이 아닌 축 처진 어깨가 너무 서글펐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를 한잔 했습니다. 술을 한잔 들이키더니 금방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몸이 많이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힘들게 말을 꺼냈습니다.

“김신부, 우리 아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했어. 나 없더라도 김신부와 모든 것 상의하고 의지하고 살라고.”

다른 친구들은 평범한 가정을 이루어서 별 탈 없이 살아가는데 이 친구만은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홀아비의 그늘에서 자라는 친구의 자녀에게 더 애틋한 정이 느껴졌습니다. 더욱이 자식들에게 한 친구의 당부의 말은 약해진 친구의 모습을 보는 듯해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삶과 죽음은 우리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서로가 위로와 희망이 되어줄 수는 있습니다.

작년 안식년(사제 10년 이상이면 연수 등 재충전의 기회가 주어짐) 중에 동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를 여행했습니다. 그 때 배운 단어가 있습니다. ‘잠보,’ ‘라피키,’ ‘하쿠나마타타’입니다. 동아프리카는 주로 스와힐리어를 씁니다. ‘잠보’는 ‘안녕하세요’, ‘라피키’는 ‘친구’, ‘하쿠나마타타’는 ‘아무 문제없어요’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들에 그들의 마음이 잘 담겨져 있습니다. 내가 본 그들의 마음은 가난하지만 순수하고 소박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긍정하며 현재를 즐길 줄 아는 마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세상에는 나의 친구처럼 어렵고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상의 삶조차 하루하루가 버거운 이들도 있습니다. 남북이념 대치 속에 이산가족의 아픔이, 세월호 침몰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 메르스로 상처받은 사람들,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배회하는 청년들, 좌절과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현실의 삶과 육신의 고통이 영혼의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고 용기를 내었으면 합니다. 자신의 고귀한 삶을, 생명을 다시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나의 친구, 그리고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함께 외치고 싶습니다.

잠보! 라피키! 하쿠나마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