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참으로 더웠습니다. 입춘을 지나며 꺾이기 시작한 폭염은 칠석에 맞춰 내린 비로 수그러들더니 이젠 제법 밤기운이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여름을 지나며 피기시작 하는 꽃이 있습니다. 해바라기 꽃입니다. 해바라기는 행복, 기다림, 그리움등 다양한 꽃말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태양을 향해 피었다가 고개를 숙이는 꽃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라는 꽃말이 더 마음에 다가옵니다.

미국 위스콘신 주 오클레어에 약 7㎞에 달하는 해바라기밭이 있습니다. 이 해바라기 꽃밭은 암으로 숨진 아내를 위해 돈 재키시(Don Jaquish)가 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재키시는 아내 바베트(Babette)가 지난 2006년 암진단을 받고 투병을 시작할 때부터 희망의 표시로 집 주변에 해바라기 꽃을 심었고 지난해 11월 아내가 끝내 세상을 떠나면서 해바라기 밭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웃들도 싼 값에 밭을 임대해 주고 재키시의 뜻에 동참하면서 7㎞에 걸친 1.62㎢ 넓이의 해바라기 밭이 만들어졌습니다. 돈 재키시는 곧 수확될 해바라기씨를 판매해 생전에 약속한 대로 암 치료병원이나 암 연구기관에 수익금을 기부할 예정이라고 하니 그 뜻에 또 한번 경의를 표하고 두 사람의 사랑에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부부가 평생을 같이 살면서 부부싸움 한번 안하고 살기란 그리 쉬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인생의 반려자로 한평생 사랑하며 살겠노라고 굳게 약속을 하고 친지들과 이웃들에게 맹세를 했건만 살다보면 처음 약속은 어디로 간데없고 TV 리모컨 때문에 싸우고 치약을 중간부터 짜 쓴다고 잔소리를 합니다. 아주 사소한 문제로 부부 싸움을 하게 됩니다. 등 돌린 마음을 풀지 않으면 법원까지 가게 되고 결국 남남이 되고 맙니다. 불가에서 부부의 인연이 7천겁의 만남이라고 하는데 그 소중한 만남이 악연으로 변하는 것은 경직된 마음을 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 마음 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2005년 7월 어느날 아내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당뇨로 병원에 약을 타러 갔다가 검사를 했는데 의사가 큰 대학병원으로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 보라는 것이었고 신장 암이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부랴부랴 서울로 섭외를 하여 큰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해습니다.

수술은 잘 됐지만 아내를 간호하며 ‘이 사람이 없으면 어찌 남은 생을 살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숨이 콱 막혀 오는 거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20년동안 살아온 모습이 필름처럼 돌아갔습니다. 그후 나의 생활 패턴이 바뀌었습니다. 아침에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밥을 하게 되고 누가 하라고 하지 않아도 청소를 합니다. 아내의 일을 덜어주는 것이 내 손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이 빈 마음으로 사는 것이고 진정 동반자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금강경에 만일 보살이 아상과 인상과 중생상과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상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주착심(住着心)과 분별심(分別心)을 말합니다. 성품은 텅비어 맑고 고요하나 마음은 6근(六根)을 통하여 들어온 정보들에 의하여 나의 기준이라고 하는 상이 만들어지고 그 상에 의하여 상대를 평가하는 분별심이 일어나며 믿고 확신하는 마음 때문에 주착심이 생겨납니다. 주착과 분별심이 없는 텅빈 마음으로 가정생활을 한다면 치약을 가운데 눌러 짜도 내가 가서 다시 몰아 짜주고 아내가 보는 텔레비전 프로를 같이 본다면 리모컨 쟁탈전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부부지간의 사소한 마음도 한 마음 바꾸고 보면 이렇듯 행복해집니다. 돈 재키시와 바베트도 해바라기 같은 마음으로 텅비어 가득찬 사랑이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