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 마당의 금목서 꽃 향기가 지나는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사찰을 찾는 사람들은 스님을 보고 참 좋은 곳에 산다며 이런 곳에 살면 근심이 없겠다며 부러워합니다.

맞습니다. 천년을 두고 내려온 고찰에 깃들어 산다는 것은 제게도 큰 복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반면에 큰 복에는 반드시 큰 책임감이 따릅니다.

도량을 청소하고 나무를 심고 참배객들에게 불편한 점이 없는지 살피고 누구일지 모르지만 후대를 위해서 사찰을 지키고 가꾸는 일은 쉬운 일 만은 아닙니다.

어떤 스님이 출가를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시골에 계시는 늙으신 부모님을 뵈러 갔다고 합니다.

집 나간 아들이 찾아 왔으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저녁 밥을 차려주고 같이 앉아서 도란도란 묻더랍니다. 출가해서 스님이 되니 어떠냐고. 그 스님은 별 생각 없이 힘들었던 일을 주섬주섬 푸념삼아 늘어놓았답니다.

그때 늙으신 아버님이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래.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지. 그렇지?”하는 말을 듣자 지금까지 들은 부처님 말씀 그 어떤 것 보다도 그 말씀이 더 와 닿았답니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아버지가 오랜 세월 터득한 경험이 부처님 말씀처럼 지혜로 다가온 것입니다.

흔히들 불교가 참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 때마다 저는 “글쎄요, 불교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교가 다루고 있는 인생의 문제가 어려운 것이 아닐까요”라는 반문을 합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의 말씀을 듣다 보면 그분들의 경험에서 나온 지혜가 불교의 가르침과 같은 것을 종종 보곤 합니다. 알고 보면 너무 쉬운데 아직 눈을 가리고 있는 먼지들이 많아서 귀를 막고 있는 소음이 너무 커서 잘 보고 듣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가을철이라서 그런지 요즘 부쩍 절을 찾는 관광객들이 늘었습니다. 관광객들을 피해 동백숲을 거닐다가 ‘네 마음이 고요하면 시장거리에 있어도 산중 같고 네 마음이 들뜨면 산중에 있어도 시장 거리 같다’며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글이 생각납니다.

추사는 초의가 일지암에 틀어박혀 좀처럼 한양 걸음을 하지 않는 것이 몹시도 서운했나 봅니다.

초의보고 너는 시장거리가 산속보다 못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산중에서 네 마음이 들뜨면 장차 어디로 쫓아가려고 하느냐며 시장거리에 있더라도 산중에서 보듯 하면 거기가 거기 아니냐면서 심술을 부립니다.

초의에게 추사는 참 좋은 친구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문득 제 도반(함께 도를 닦는 벗)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서울의 청계천에서 흐르는 시냇물을 보며 잠시 다리를 쉬다가 뭔가를 깨달은 듯 제게 던진 말이었습니다. 몇 달 전부터 한국에 오면 친구가 많지 않다며 별 시답지 않은 일로 투덜거리더니 그 고민의 답을 내렸나 봅니다.

“결국 인생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전부다.”

난 툴툴 거리면서 “그래 난 물 흐르는대로 꽃 피는대로 살련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가을이 되어서인지 그렇게 헤어진 도반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