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서 사라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도 한다. 관심을 끌려면 일단 눈에 보이는 것이 있어야 하고, 보이는 것 또한 아는 만큼 볼 수 있으니 알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알게 되면 확인하고 경험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경험은 시청각을 포함한 오감을 통한 체험이 필요하다. 이 체험의 기본에는 서사구조의 이야기가 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 그래야 감동이 있고, 여운이 따르며, 울림이 생긴다. 이런 것이 오래가고, 추억이 되고, 기억으로 남아 지역의 관광자산이 된다.

이야기의 시작에는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과 장소가 그 대상의 기본이다. 이런 기본을 지역에서 찾아야 하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지역의 것으로 재탄생 시켜야한다. 광주월드컵경기장은 하나의 좋은 사례다.

이곳은 지난 7월에 광주U대회가 성공리에 치러진 주경기장이었다. 모두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한다. 광주와 중앙정부는 각자에게 축하를 한다. 저비용, 고효율의 경기운영과 성숙한 시민들의 헌신적 참여, 국제대회 사상 대한민국의 최초 종합우승 등 장하기 그지없다. 이런 성과를 이룬 곳이 광주다. 그 역사적 이야기의 주무대가 광주월드컵경기장이다. 그런데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가 끝나고 광주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 ‘성공적이었다’란 허공의 메아리만 남길 것인가?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에서 한국과 스페인 경기가 열렸던 곳도 광주였다. 승부차기 끝에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올렸다. 이를 두고 새로운 ‘신화’(神話)를 썼다고 온 대한민국이 흥분했다. 마지막 골을 넣고 전 국민의 환호 속에서 환하게 웃던 홍명보선수의 그 웃음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신화’를 썼던 이곳은 어찌 됐는가? 신화의 흔적이라도, 기억이라도 남아 있는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허공으로 사라진 메아리뿐이다.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는 ‘2002 FIFA월드컵기념관’을 만들었다. 수원 월드컵경기장엔 ‘축구박물관’이 있다. 광주 월드컵 경기장엔 신화의 흔적이 없다. 다만, 소비를 부추기는 상업공간과 이를 후원하는 비인간적이며 영혼 없는 물질 만능주의의 주차장만 남아 있다.

국제대회 최초의 종합우승과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쓴 이곳을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현재의 달콤함 때문이다. 미래 후손들에게 물러줄 큰 문화자산을 만들 기회를 잃었다. 지금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린 수학시간에 배웠다. 아무리 큰 수라도 ‘영(0)’을 곱하면 ‘영(0)’이 된다는 것을, 우린 아무리 작은 자산이어도 이야기를 곱하고, 마케팅을 더해 커다란 문화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혹자들은 말한다. 광주는 관광객들이 가볼 만한 곳이 없다고…. 나도 그 의견에 일부 동의한다. 그런데 정말 가치있는 이야기 소재가 될 것들이 없는가? 혹시 우리가 가치를 찾지 못한 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작은 역사적 ‘사실’ 하나를 가지고도 수많은 ‘이야기’를 덧대어 훌륭한 문화자산과 관광자원으로 만들어 가는 곳이 많다. 그러나 광주는 역사적, 감동적 ‘사실’을 가지고 있는 곳을 찾아내고, 이야기로 포장해 수면 위로 올리는 노력이 없어 아쉽다.

지역의 경쟁력은 많은 관광객들과 기업인들이 방문해 자연스레 좋은 추억과 발전 가능성을 찾아가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다시 오고 싶고,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그런 장소와 공간들이 많아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이런 곳을 발굴해야 한다. 약간이라도 징조가 있다면 이를 잘 다듬어 보석으로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서 언급한 광주 월드컵경기장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광주와 전남에 이런 공간이나 장소, 인물들이 또 없을까? 찾아내야 한다.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늘 가까이 있어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별것’으로 만들고,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하는 지혜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럴듯한 감동의 이야기를 곱하고, 마케팅을 더해 그 가치를 극대화하자. 이는 문화관광자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