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가의 학문적 양심과 전문성을 통해 서술되는 장기 지속적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일부 권력자들은 역사를 왜곡하고 정치도구화하면서 순간순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활용하려 했고, 또 일부 역사가들이 그런 불순한 목적에 동원되고 편승한 사례가 있었다.

권력자들이 역사를 정치의 도구로 악용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 중 하나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재자 히틀러와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 그렇게 했다. 한국에서는 박정희 정권이 그랬다. 역사왜곡으로 전 세계적인 비판을 받고 있는 일본의 아베정권도 차마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국정화 제도이다. 그런데 이런 후진적인 제도를 박근혜 대통령이 앞장서서 시행하려 하니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정부ㆍ여당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대해서 전국의 역사 전공 교수 및 중ㆍ고등학교 역사교사 대부분이 이미 반대 및 집필 참여 거부 의견을 표명하였다. 시민사회와 교사, 학생, 야권 등 각계각층에서도 국정화 반대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11월 3일 교과서 발행체제를 국정으로 확정해 고시하였다.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자기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는 19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정부를 전복시켰다. 그는 다시 1972년 제2의 쿠데타(유신체제 수립)를 일으켜 반쪽 민주주의마저 완전히 말살해버렸다. 그런 박정희의 잘못을 그의 딸이 역사쿠데타를 통해 은폐하려 하고 있다. 박정희에게는 공과(功過)가 함께 있는 만큼 공은 자랑하고 잘못은 솔직히 인정하면서 자신이 아버지의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말하면 국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을 텐데 말이다.

역사쿠데타의 1단계 작업은 11월 3일 국정화를 확정 고시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1단계 과정에서 국민들의 거대한 저항이 있었지만 완벽하게 저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의해 박근혜 정권은 이미 깊은 내상을 입었다. 곧 착수될 집필과정은 쿠데타의 2단계에 해당한다. 전국의 대다수 역사교수들이 집필 작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2단계 작업은 심하게 비틀거리며 진행될 것이다. 물론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국정교과서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만큼 교과서는 분명 만들어질 것이다. 권력에 빌붙어 기생하거나 친일·반민주적 사고에 물든 어용학자들을 동원하여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교과서가 어떤 모습을 가질 지는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현 집권세력들은 국정교과서를 만든 것으로 자신들의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희희낙락해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이다. 교사들에 의해 강력한 2차 저지선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7년 국정교과서가 배부된 후 교실에서는 이런 강의가 진행될 것이다. ‘박정희에게는 공과(功過)가 함께 있다. 그런데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의 공만 부각시키고 잘못은 어물쩍 희석시키기 위해 국민적 저항을 무릅쓰고 역사쿠데타를 감행했단다. 어디 한번 그 흔적들을 살펴볼까.’ 결국 국정교과서는 교실에서 휴지종이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게다가 그 교과서의 수명이 얼마나 되겠는가.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형편없이 추락시킨 세력들에 대한 심판이 있게 된다면 그 수명은 불과 1년 남짓으로 그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정권을 퇴출시킨 경험을 갖고 있다. 국정교과서도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다. 문제는 실패가 명약관화한 역사쿠데타를 시도해 국력을 낭비하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대통령의 어리석은 행위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일차적 목적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대통령과 그 아류들은 잘못된 전철을 반복하려 한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우리가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공화국의 주체는 국민이라는 점을 똑똑하게 인식시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