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출가해서 수행자로 살지만 오랜 세월 동안 길들여진 습관과 고정관념은 나를 당혹스럽게 할 때가 있습니다.

세속에서 부대끼는 중생들은 누구나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회의 관습과 힘의 논리에 의해서 판단을 맡기는 경우도 있고 무지해서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체면이나 남의 눈치 때문에 좋은 마음을 일으켜도 용기가 나지 않아서 모른 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 또한 18년 동안 수행자로 산다고 하지만 뒤늦게 후회하는 결정을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때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늘 스스로를 되새겨 봅니다.

며칠 전 동국대의 한 학생이 50일 동안 단식을 해서 응급실로 실려 간 일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학생의 단식 47일째 되는 날 제가 해외포교지를 만들 때 발행인으로 모셨던 스님이 동국대 이사를 사퇴하고 생명을 살리자며 그 학생의 텐트 옆에 조그마한 텐트를 치고 단식을 하셨습니다.

선한 눈매에 너무 늦게 시작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며 부끄러움이 담긴 목소리에 저도 숙연해지고 말았습니다. 그 일이 불씨가 돼서 동국대 이사들이 전부 사퇴하고 팽팽하게 맞섰던 갈등을 풀 수 있는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누구나의 가슴 속에 흉터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요?

누구는 학생이 과격하다고 하고 누구는 정의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옳다고 하기 이전에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더 숭고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 입장에서 보면 학생을 지지했던 측이나 반대했던 측 모두 누구나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단식을 하셨던 그 스님은 부처님이시라면 분명 생명부터 살리고 보자 하셨을 거라며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단식하는 것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본인이 단식하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행정을 책임지는 주체들의 노력과 결단 만이 아니라 대립하는 양측 모두의 노력과 결단을 호소했습니다.

다행히 그 호소의 진정성이 받아들여져 사태가 극단적으로 악화되는 것을 가까스로 막을 수는 있었지만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좁히는 일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시골 산중에 있어도 세상의 소리는 막을 수 없는지 자꾸 흉흉한 소식이 들어옵니다. 물대포에 옛날 사라졌던 사복체포조인 백골단이 다시 부활한다는 말까지 세상의 갈등은 예전 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대규모 집회에 성직자들이 평화를 지켜야 한다며 인간 띠를 두르겠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심지어는 조계사에 피신한 한상균 위원장을 체포하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해서 폭력을 행사하겠다는 말까지 나왔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품안에 날아온 비둘기를 위해 자신의 살점을 베어 마귀에게 줍니다. 결국엔 자신의 몸을 다 던져서 비둘기 한 목숨을 살립니다. 이 일화는 부처님이나 비둘기나 누구의 생명이든 똑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또한 종교의 품속에 들어온 이는 누구나 마땅히 보호 받을만 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그것을 깨트린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까요?

경전을 보면 부처님 당시에 제자들이 부처님께 소소한 일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접 묻는 일화가 많습니다. 이럴 때 부처님이 계셨더라면, 예수님이 생존 하셨더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정 묻고 싶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