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죄인입니다.” 이 말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말입니다. 한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는 누구입니까?” 호르헤 마리오는 이름이며 베르골리오는 성입니다. 그의 신원을 물은 것입니다. 이를테면 “김영철은 누구입니까? 신부 말고” 이렇게 물은 것입니다. 교황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이것이 가장 적절한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하기 좋은 말이 아니라, 정말로 나는 죄인입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봅니다. 사제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그 순수했던 첫 마음이 떠오릅니다. 중고등학생 시절, 내 마음 속에서는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막연한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 남을 위하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 나를 투신하여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앞에 다가오는 어려움이나 시련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삶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한편으로는 못 할 것이 없을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신학교(가톨릭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던 때였습니다. 마음은 긴장이 되고 성적은 오르지 않고 ‘이래서 합격할 수 있을까?’ 라는 불안이 엄습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 당신이 저를 합격시켜 주시면 신부가 되라는 것으로 알고 열심히 살아 신부가 될 것이고 불합격 시키신다면 신부가 되지 말라는 것으로 알고 뒤돌아보지 않고 장가 가겠습니다.’ 참으로 당돌한 태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마치 내가 삶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기고만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떼를 쓰다시피 했던 그런 나의 바람이 거짓말처럼 이루어졌습니다.

이후에 삶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늘 자신감에 차 있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 했습니다. 신학생 때는 시험 치르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신학교는 정해진 성적 이하가 나오면 짐을 싸서 집으로 가야만 했습니다(실제로 그런 일은 많지 않았지만). 그것을 라틴말로 ‘똘레’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일명 ‘똘레 공포증’이라고 불렀습니다. 시험 때만 되면 긴장이 되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나는 시험 때만 되면 또 그 떼쓰는 버릇이 나왔습니다. ‘하느님! 당신이 나를 이곳에 불러주셨으니 당신이 알아서 끝까지 저를 책임지셔야 합니다.’ 대담함과 과감함이 하느님을 협박하는 수준으로 나아갔습니다.

한해 한해를 지내며 조금씩 신학생의 티를 벗고 부제(사제가 되기 전 성직자)가 되었을 때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후배 한 명이 성당에서 기도 중에 쓰러졌습니다. 부랴부랴 그 후배를 데리고 인근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빨리 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날은 사제가 되기 위해 서약서를 쓰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부제들이 성당에 모여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담당 신부님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이유는 많은 이들을 기다리게 했고 다른 사람이 병원에 따라가면 될 것을 하필 내가 갔어야 하냐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너무도 서운했습니다. ‘사제가 되려는 것은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닌가!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데 쓰러진 동료를 데리고 병원에 간 것이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순간 사제직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방문을 닫아걸고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다음 날 학교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리산으로 향했습니다. 4월 초였음에도 눈이 내려서 너무도 눈부시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면서 초라한 내 모습을 보았습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내 마음을 보았고 그 마음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나는 그렇게 신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신부가 된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립니다. ‘저하나 잘 살자고 여럿 힘들게 했구나.’ 이제는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과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살아감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가끔 이런 기도로 하느님께 떼를 쓰곤 합니다. 세상에 가난한 사람이 왜 이리도 많고 왜 그들이 억눌려 사느냐고, 좀 잘 살게 해 주시라고 말입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을 가진 ‘유능하고 똑똑한 이들’이 군림하는 세상이 아니라, 보잘 것 없고 힘없는 ‘작은 이들,’ 특별히 죄인이나 가난한 이들, 버림받은 이들, 병자들, 고통받는 이들에게 자비로운 세상이 되도록 해 달라고 말입니다. 조금씩 철이 들어가고 있나 봅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어린 시절 품었던 순수한 마음을, 사제의 길을 막 내딛던 그때의 첫 마음을 되새겨봅니다. 나는 올 한 해도 하느님 자비를 입고 살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나를 용서와 인내로 잘 참아주었습니다. 덕분에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한 죄인으로서 감사할 뿐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다져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사랑과 자비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입니다. 나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