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에 부활의 열기가 일고 산야에는 봄의 향연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마른 나무에 새움이 트고 꽃 피고 열매 맺는 자연의 신비는 환상이 아닙니다. 봄 동산에 나비의 춤은 굼벵이의 신화가 아닙니다.

자연은 부활의 찬양을 높이 부르는데 우리의 실존은 그대로 깊은 심연에서 탄식합니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죽어야 할 숙명의 멍에 아래 놓여 있는 불행한 존재입니다. 죄로 인해 에덴에서 추방 당한 인류의 삶은 묘지로 향해 가는 괴롭고 긴 행렬이었습니다. 이 죽음의 행렬은 영원자에게서 떨어진 죄로 인한 인간의 비참이기 때문에 아무도 멈추게 할 수 없는 불가피한 역사입니다. 인간은 결국 죽어야 합니다. 불안하고 괴로워하고 외로워하고 탄식하며 종내 절망으로 통하는 그 길을 걸어서 묘지로 향해 가야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한 근심, 질병으로 인한 괴로움, 거짓과 미움과 다툼에서 겪는 아픔, 늙고 죽는 슬픔들입니다. 여기서 파생된 전쟁, 핵무기 등 위협, 사상적 분열과 국제 정세 불안,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파탄, 도덕적 문란과 종교적 타락 등 우리 가슴을 누르고 있는 현실 중압감은 치명적이고 위기적이며 종말적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부활의 아침은 왔습니다. 오는 27일은 부활절입니다. 절망과 죽음의 무덤 속에서 부활은 생명력의 필연적 현현으로 역사 속에 산 사실로 계시됐습니다. 이 부활의 사실은 인간의 주관적 염원이나 절망과 관계없이 역사 속에 나타난 객관적 계시였습니다. 이 역사적 계시는 인간의 이성이야 긍정하든 안하든 엄연히 역사와 세계를 향해 외치는 진리로서 사망이 생명을 결단코 음부에 가두지 못한다는 승리의 복음입니다.

너무 벅찬 사실이기에 믿고 싶어도 믿지 못하는 옅은 인간의 이성,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있을 수 없는 사실이라고 부정하는 천박한 상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썩은 밀알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마른 나무에서 새순이 자라며 유충에서 성충으로 비약하고 계란에서 병아리가 부화합니다. 생명의 법칙을 부인하는 자들을 어리석은 자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은 사랑하는 이를 무덤에 묻고 쓸쓸히 돌아오는 길에서 ‘깨달을 수 있는 진리’입니다. 부활 진리는 관념이나 교리, 소망이 아닌 현재적 신앙입니다.

죄에 매인 육체가 고통의 멍에 아래 신음하다 죽는 것은 숙명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를 죽지 않는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는 그날을 사모하며 기다리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완전한 생명관의 계시이자 실증으로 우리 소망의 보증입니다. 불사의 신앙, 죽은 자의 부활 신앙은 죄와 사망을 이미 정복한 신앙입니다. 종말에 있어서 죽은 자의 부활과 산자의 정화된 육체는 완전한 생명 본연의 자태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 신앙은 상실된 인격을 회복시키고 인간의 정신을 소생시킵니다. 썩은 양심의 재생, 무너진 윤리 생활을 부활시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두 썩어 냄새 나는 부패 속에서 새 혁신의 싹을 나게 해 새 역사를 창조합니다.

불의가 공의를 못 박아 죽이려는 시대, 전쟁이 평화를, 공포가 희망을, 억압이 자유를, 혼란이 질서를, 분열이 통일을, 미움이 사랑을, 거짓이 참을 죽여 무덤에 봉하려는 흑망의 권세를 향해 그리스도는 오늘도 살아계셔서 진리와 정의, 생명의 승리를 천명하여 새로운 가치 질서를 선포합니다.

독재의 권력 구조 밑에서 매장된 인권과 민주주의를 부활시킵니다. 죽음의 전쟁터에서 평화의 꽃이 피고 인권의 공동묘지에 자유의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합니다.

부활 신앙은 매스미디어의 홍수 속에 익사해 가는 인간을 건져서 개인의 인격과 주체성을 회복시킵니다. 과학기술의 바벨탑 속에 갇힌 인간, 사람 대우 못 받고 기계 부품이 된 인간, 관능의 노예가 돼 동물이 된 인간을 사람 노릇하도록 회복시키는 동력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이 선포하는 인간 부활의 복음입니다.

죄와 사망이 의(義)와 생명을 결단코 무덤에 봉하지 못한다는 부활 신앙을 통해 영원히 사는 그날을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