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간의 관심이 바둑으로 떠들썩합니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펼친 5번의 바둑 대결은 인간의 창의성과 적응력이 방대한 컴퓨터의 지식을 넘어서는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또한 앞으로 다가올 미래 세상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우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바둑에서 下手(하수)는 高手(고수)를 두려워하고, 고수는 無手(무수)를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무수는 수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수는 가장 최상의 수를 찾아서 바둑을 둔다는 마음이 있지만, 무수는 최상의 수를 놓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둑을 두지 않기 때문에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든 인공지능이건 간에 감정에 치우침이 없는 평상심이 승패의 관건이 됩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을 보면서 화이불류(和而不流)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화하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화합하다는 뜻의 화(和)는 동양 음악에서 사용되는 개념입니다. 서로 다른 악기의 소리가 모여서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낼 때, 그 새로운 소리를 화(和)라고 합니다. 화음(和音)이란 의미도 서로 다른 소리의 만남을 통한 새로운 소리라는 뜻입니다.

화음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다름에 대한 인정이 선행돼야 합니다. 나와 다른 소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화음은 절대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다름에 대한 인정과 긍정이 화합의 첫 걸음입니다. 또한 다른 소리를 인정하고 내 소리를 그 소리에 맞추려면 나를 낮춰야 합니다. 나만 돋보이고 나만 보이려 한다면 절대로 화음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이런 음악의 화음을 인간세계에 응용한 철학이 화이불류의 철학입니다. 화이불류는 ‘서로 다름을 모아 새로운 화합의 소리를 만들어내라’는 뜻입니다. 不(아니 불)과 流(흐를 류)는 그러나 절대로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일방적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둑을 두면서 상대의 수를 인정하지 않으면 바둑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서로 서로 한수씩 나누어 둬야 합니다. 서로 용호상박으로 최선의 수를 찾으려는 투혼이 있을 때 바둑은 하나의 완전한 명국이 됩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중용의 ‘화이불류’ 철학이 생각나는 것은 선거 또한 바둑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더 나은 정책 대결로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지도자는 화이불류의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와 다름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와 다름은 나의 적이고, 같음만이 내 편이라고 하는 철학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밤과 낮으로 돼 있습니다. 숨은 것과 나타난 것을 잘 조절할 줄 알아야 부국 대한민국이 될 것입니다. 이 조절 역시 음은 양을 인정하고 양은 음을 인정할 때 가능합니다. 하늘을 나는 새는 한쪽 날개로는 비행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원불교 3대 종법사인 대산종사는 “최대의 행복은 최대의 불행을 넘어서야 오나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니라, 부처님이 인욕선인이었을 때 가리왕에게 팔다리가 찢기는 고통을 당하며 넘기신 공덕이 없었다면 어찌 부처가 될 수 있었겠는가? 장차 우리도 그런 경계가 수없이 있으리니, 단단히 각오하고 넘기지 않으면 진리가 자격이 없다하여 남김없이 빼앗고 마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사랑받고자 하거든 남을 사랑하고 내가 미움 받지 않고자 하거든 남을 미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복을 좋아하지만 정작 본인이 복을 지을 자리는 게을리 합니다. 과정과 결과를 별개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리는 씨앗을 심어야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일과 수확은 하나의 과정입니다.

화하되 주체를 세우고, 자신의 색깔을 나타내되,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화이불류의 철학이 생각나는 요즘입니다.